[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독일에서 공부하던 필자의 딸이 일시적으로 귀국했다. 공항에서 진단검사 결과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지침에 의해 14일간 격리생활을 했다. 좁은 집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불편할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로 거처를 마련했다. 의도치 않은 격리였기 때문에 당국에서 기본적인 생존키트 정도는 공급해 주겠거니 생각했다. 이전에 귀국한 교민들과 해외 입국자들에게 격리비용은 물론 격리기간 동안 필요한 생필품이 모두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공급된 물품은 의료용 쓰레기봉투 단 두 장뿐, 다른 생필품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배정된 예산이 이미 바닥났다는 이유였다. 하는 수 없이 14일간 생활에 필요한 모든 용품들을 집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호사가들은 예산이 떨어져 그런 건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 이런 경우를 보자. 얼마 전까지 공무원 사회에서는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할 때 배정된 예산이 모두 소진되면 더 이상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직 사회에서는 '우선 먹는 게 임자'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이런 이유로 잡음 많던 이 문제가 형평에 어긋난다는 법원판결까지 나왔다. 자가격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먼저 먹는 게 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자가격리 문제는 생존의 문제와도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그렇다 치자. 당국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착용하지 않을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마스크 구매는 개인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자신의 의사가 아닌 강제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면 그 구입의 대가는 강제한 쪽이 부담을 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마스크를 구입할 여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는 이동권을 제한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값싼 마스크 한 장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한 노숙인이 다른 사람들이 쓰고 버린 마스크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 뉴스를 탔다. 당사자의 인터뷰도 있었다. 마스크를 다시 주워 빨아 쓴다는 대답이었다.

논의를 위해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는 경우를 다시 가정해 보자. 그는 적발되어 벌금을 부과받을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심한 처벌도 받을 수 있다. 지나친 사례적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래도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마스크를 공급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우리는 볼품없는 '아베 마스크'라고 비웃었지만 그런 마스크라도 국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더라면 위의 사례와 같은 모습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일부 지역의 경우 마스크 의무착용과 동시에 무상공급을 원칙으로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강제가 강제 행위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강제했을 경우 그 강제 후에 따르게 되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경우지만 제주도에서는 무조건적인 강제격리로 아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강제로 격리를 시켰으면 격리자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을 해야 마땅한 일이다. 격리만 강제하고 어떤 상황인지 살피지 않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사실이 그렇다. 코로나19로 격리되었던 한 노인이 자치제의 도움으로 아사(餓死) 직전에 겨우 목숨을 건진 경우도 있다. 만일 주변에 연고가 없는 경우 격리를 당하게 된다면 그 생존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문밖출입이 완전히 금지된 상황에서 굶어 죽으라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과 강제가 주어진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 말로는 코로나19 비상시국이니, 전시상황이니라고 외치면서 국민들의 의무화만 강조할 뿐 모든 것을 개인의 일로 떠밀어 버리는 것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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