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장항제련소 모습. /연합뉴스
옛 장항제련소 모습. /연합뉴스

충남 서천의 옛 장항제련소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아픔과 상흔이 고스란히 남겨진 곳이다. 개발바람에 휩쓸려 흔적조차 사라진 다른 잔재들과 달리 이곳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이곳이 개발에서 소외됐던 가장 큰 이유는 환경오염이다. 장항제련소는 지난 1936년 준공돼 1989년 운영 중단까지 50년 넘게 각종 중금속 등 오염물질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주변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돼 그야말로 버려진 땅이 됐다. 그랬던 곳이 이제 국제적인 생태거점으로 탈바꿈하려 한다. 생태복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남을 꿈꾸는 것이다.

장항제련소는 일제가 세운 국내 3대 제련소 중 하나로 210m에 달하는 굴뚝은 당시 아시아 최대높이로 근대산업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제련소를 뒷받침하는 철도, 항만 등의 기반시설이 더해지면서 한때 서천군 인구가 16만명이 넘을 정도로 번성을 구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같은 화려함의 그늘은 깊고도 짙었다. 중금속에 오염돼 정부와 지자체가 매입한 인근 부지만도 110만㎡가 넘는다. 토양정화작업에 8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정화작업을 마친 뒤에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여전히 외면받는 불모지일 뿐이었다.

이곳처럼 산업시설 등의 부지로 쓰이다가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된 채로 방치된 지역을 '브라운 필드'라고 한다. 옛 장항제련소야말로 국내의 대표적인 브라운필드인 셈이다. 쓰임새를 찾지 못하던 이곳을 국제적인 생태환경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지난 2019년에 나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생태복원형 국립공원이라는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추진동력이 부족했던 이 사업은 지난해 한국판 뉴딜 전략사업으로 힘을 얻게 됐다. 이런 배경의 국제 환경테마특구 조성사업의 밑그림이 그려지면서 사업추진이 구체화되고 있다.

장항 생태단지는 인공생태습지와 생태모방 연구센터·실증화단지, 연안습지 연구센터 건립 등이 핵심을 이룬다. 여기에 스마트 생태·역사 탐방로 조성, 관광거점 연결 친환경 교통수단, 해양·생태산업 클러스터 구축 지원 등이 더해진다. 한마디로 친환경 생태의 거점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는 시대적 요구와도 맞아떨어진다. 기후위기 등 지금의 생태계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탄소중립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에 '탄소중립 및 기후위기 시대 대응'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미래를 위한 구상과 더불어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곳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토지매입비와 정화사업 비용을 합치면 3천억원 가까운 돈이 투입됐다. 환경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최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이 2040년까지의 제4차 충북도 종합계획에 기후변화 대응 및 환경보전 예산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아직 밑그림 단계인 만큼 옛 장항제련소 생태단지 재탄생의 갈 길은 멀다. 그러나 꼭 가야할 길이기에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힘찬 발걸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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