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가 된 주민·밭농사 짓는 단원… '만종리 희망가'

단양 만종리 대학로 극장 단원들이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연극 무대를 선보인다.
단양 만종리 대학로 극장 단원들이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연극 무대를 선보인다.

〔중부매일 정봉길 기자〕"젊은 사람들이 와서 노래 부르고 공연을 하니 우리들도 젊어진 기분입니다"

100여 가구 180여 명이 모여 사는 '단양 만종리'.

조용하기만 했던 이 시골 마을에 극단이 오면서 마을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한 때 서울 대학로에서 주름잡던 허성수 만종리대학로극장 대표.

그가 이 두메산골로 내려온 이후 이 마을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단양 만종리 대학로 극장 단원들이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연극 무대를 선보인다.
단양 만종리 대학로 극장 단원들이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연극 무대를 선보인다.

관광지로 이름난 단양의 영춘면 만종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만종리를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 환영합니다" 주민 일동이 내건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소백산과 단양강이 어우러진 첩첩산중에 자리한 만종리.

이 곳에 연극을 올리는 극단이 생긴 것은 2015년 4월 5일.

이 극단(대학로극장)의 사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대학로에서 150석의 규모를 가진 극장을 개관한 극단.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극단의 창작극 '불 좀 꺼주세요'가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무려 3년동안 장기공연이란 기록을 세우며 공연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하지만 이 극단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치솟는 대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28년동안 운영해 온 극단을 폐관하게 된다.

극단의 총감독 허성수씨는 고향인 단양 영춘면 만종리로 오게 된다.

이후 '대학로극장'이 '만종리 대학로극장'으로 재개관된다.

마을에서 마련해 준 빈집과 마을회관 등을 거처로 쓰니 주택비용을 걱정할 일도 없어 연극인들의 무대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만종리 대학로극장 개관작인 헤밍웨인 원작 노인과 바다에는 정재진과 이동준, 백효성 극단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 열연했다.

마을 주민들과 단양읍내, 제천시에서 2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또 한영애와 해바라기 등 인기가수들도 함께 해 새 출발을 축하했다.

단원들이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도 없이 농사짓는 밭 가장자리 뜨락에서 연극 공연을 펼치고 있다.
단원들이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도 없이 농사짓는 밭 가장자리 뜨락에서 연극 공연을 펼치고 있다.

수박과 수수를 심은 밭 한가운데 마련된 야외무대.

128석의 객석을 가득 채운 마을주민들은 배우 정재진과 이동준의 열연에 숨을 죽이며 새로운 문화에 감격했다.

개관 공연이 끝난 직후 단양 향토 극단인 '마당'과 <연인, 두향>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온달과 평강의 러브 스토리를 소재로 한 연극 <아단성>을 선보였다.

이들이 자리 잡은 영춘면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사적 제264호 온달산성(아단성)이 있다. 단원들은 온달산성에서 전쟁에 출정했다가 전사한 온달의 이야기로 연극을 창작하기도 했다.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2015년부터 토요일마다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올해까지 농업과 연극을 병행하며 600여 차례 공연했다.

주요 공연을 보면 주민과 함께하는 낭독극 <엄마를 부탁해>, 연극 <만종리 햄릿><술>, 무용극 <예술과 자연><늦게 배운 피아노>, 연극 <그 해 봄날>, <하얀민들레>, <아내>, <온달과평강> 등을 공연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의 피해가 극장 단원들에게까지 찾아왔다.

단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공연을 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급기야 콩, 감자 등 농사를 지으며 단기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한때 16명이던 단원도 8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단원들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 극장은 충북문화재단의 코로나19 온라인 공연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돼 '옥자'를 선보였다.

지난 4월에는 1년여 만에 만종리 밭에서 연극 <봄>과 <별이 빛나는 밤에>를 선보였다.

이 공연은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다.

감자 등 농사를 짓고 있는 나지막한 밭 가장자리에 어떤 인공구조물도 없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실험무대는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와 퍼포먼스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봄의 정취 속에서 바이올린 연주의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져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만종리 대학로 극장의 미래지향적 문화실험은 예술 일변도의 기존 극단의 방향에서 탈피했다.

게다가 자연과 농업,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대상과 소통하며 다양한 무대를 꾸며가고 있다.

단원들이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도 없이 농사짓는 밭 가장자리 뜨락에서 연극 공연을 펼치고 있다.
단원들이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도 없이 농사짓는 밭 가장자리 뜨락에서 연극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극단 측은 앞으로 마을의 연못, 강둑, 방앗간 등 다양한 곳에서 산골만의 개성있는 연극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 문화예술이 추후 다른 예술단체들이 참고할만한 자료가 되고 지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허성수 대표(만종리 대학로극장).

그는 마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연극을 꾸며 무대에 올리는 등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도전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허 감독은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엔 단원들과 연극 연습과 공연을 이어 가고 있다"며"만종리 대학로 극장이 농촌지역과 예술인들이 상생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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