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재원 정치행정부장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충북도가 도의회와 같은 부류로 묶이지 않으려면 '생활임금조례'에 명쾌한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제정을 요구해 결국 도의회를 통과한 생활임금조례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위법 위반의 '위험성 조례'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에 생활임금액을 정해 지급하도록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고 그 근거도 없다.

'지방재정법' '지방계약법' 위반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 인건비 부담을 안겨주는 새로운 규제로 작용하는 우려도 있다.

도의원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고유권한을 이용해 조례를 제정했다. 자치입법권을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행사하면 지방자치의 역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의원들은 다른 광역 시·도의 생활임금조례와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의미일 뿐, 관련 위원회를 통해 적용 대상을 제한하면 부작용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면에 있는 여파는 감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변명에 가깝다.

생활임금조례는 도의원들의 단편적인 생각처럼 단순히 생활임금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상임위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떼법'이 계속해서 탄생할 수 있는 모태를 본인들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심각성이 보일 것이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조례를 제정하라고 주민 청구가 이뤄지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상위법 위반 소지로 불가능하다고 반대할 명분이 있을까.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이중적 잣대라는 반발이 분명할 것이고, 당연히 형평성 차원에서 거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도내 시·군에서 제정한 자체조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군은 공포 전 상위법 위반 소지를 가리기 위해 도에 조례 제정을 사전 보고한다. 도는 문제가 있을 경우 해당 시·군에 다시 심의를 요구하라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과연 이 유권해석이 먹힐까.

본인들도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는 생활임금조례를 시행하면서 시·군 조례에 문제를 지적할 자격은 아니라는 식으로 무시할 수 있다.

이래서 노동계가 만들고 도의원들이 낳은 생활임금조례에 충북도의 고심이 깊은 것이다. 재의요구가 있기는 하나 이미 의결한 사항을 도의원들이 번복할 가능성은 낮다. 노동계의 반발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승산도 없고, 노동계 원망도 뻔한 재의요구가 도 입장에서는 득이 될 게 없다.

박재원 정치행정부장
박재원 정치행정부장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직무유기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재의요구를 왜 안했느냐고 도의회에서 역공하면 그때서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가능성이 낮고, 좋은 소리 못 듣는 힘든 과정이라도 행정기관으로서 책무를 다 해야 한다.

어쩌면 재의요구가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 집행부로서 할 만큼 한 것이고, 책임 소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제 '저항'과 '방관' 두 가지 중 어떠한 기록을 남길지는 충북도의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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