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배롱나무에 꽃이 피어 직장의 정원이 화사하다. 날이 갈수록 분홍색 꽃이 푸른 잎보다 많아진다. 꽃송이가 이런 속도로 불어나면, 나무를 뒤덮으리라. 꽃 사태가 일어나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과 분홍빛 꽃무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팔월이다.

요즘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먼지도 불볕더위라 쉬어가는가. 이웃 나라 국민도 공장 가동을 멈추고 여름휴가를 떠났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눈을 뜨면, 그날의 기후가 훤히 보인다. 시야가 맑고 드넓은 날은, 동살도 노을도 멋지게 펼쳐진다. 사람들은 코로나가 사라져도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벗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정녕 먼지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인가.

먼지는 예전에도 존재하였다. 내가 아는 먼지는 질적으로 다르다. 동네 골목을 휘돌아 한참을 걸어 나가면, 길게 뻗은 신작로가 보인다. 그 길에는 경운기와 세 발 트럭이 주로 다니고, 택시는 드물게 다녔다. 세 발 트럭이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이 신기하여 트럭의 꽁무니를 우르르 따라간다. 도로포장이 되지 않아 트럭은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고 멀어진다.

어디 그뿐이랴. 맨땅에 소나기라도 내리면, 대지는 굵은 빗살로 매를 맞는 듯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마치 땅바닥에 깔린 마른 흙이 진저리를 치는 듯 흙먼지가 일어난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빗살이 일군 흙내를 예민한 후각이 먼저 알아챈다. 그 시절 동네 아이들이 흙강아지가 되어 몰려다녀도 먼지 때문에 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의 먼지는 예전과는 너무 다르다. 일상의 먼지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니 먼지를 반길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노약자는 외출을 삼갈 정도이다. 편안한 삶을 위하여 생활용품을 만든다. 제품을 만들고자 갈고 부수고 깨트리는 등 무수한 공정이 일어난다. 필수품 중 하나인 핸드폰, 하루라도 손안에 없으면 불안함을 느낄 정도의 물건이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공단의 가로수는 은행나무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푸른 은행잎이 누렇게 타들어 가 이상하게 여겼다. 원인은 핸드폰 액정을 만드는 공장의 환기통에서 불어온 바람 때문이었다. 액정을 만드는데 소요한 화학약품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로 공기 중에 해로운 먼지가 나돌아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업체는 황급히 공기정화 시설로 조치하였지만, 사전에 주변인을 배려하지 않은 아쉬운 사건이었다. 여하튼 식물이 시들어 말라버릴 정도였으니 인간에게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랴.

인간은 먼지를 떠나선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직장어린이집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친환경 실천의 마음이리라. 정녕코 그대의 사랑스러운 손주를 위해서라도 먼지의 복수는 만들지 말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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