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며칠 전, 나이는 동갑이지만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 긴 시간 동안은 아니었지만,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었다. "마음은 출력물과 같아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개중에는 마음이 꼬인 분들도 만나게 된다. 누군가 800만 원을 기부했다고 하면 "돈도 많은 사람이 천만 원을 채워서 하든지, 800만 원이 뭐야" 이런 반응을 보인다든지, 어떤 분이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분의 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원래 이런 허물이 있는 사람인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야"라는 식이다.

이전까지 필자는 '이런 꼬인 사람은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야'라고 단정 지어 생각하곤 했는데, 며칠 전 만난 수행자의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의 마음이 꼬이게 된 주변의 환경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출력할 때도 어떤 기종의 프린터를 사용하는지, 레이저 방식인지 잉크젯 방식인지, 잉크는 정품인지, 종이는 고급지인지, 광택지인지 무광택지인지, 원본 사진의 화소 수가 큰지 작은지 등에 따라 출력물의 품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서 지금 자주 만나는 사람들, 자신을 둘러싼 환경,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등의 여러 요인에 의해서 마음 씀이 변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2019년 대한민국 독서 대전에서 강의했던 미국의 포크가수 밥 딜런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미국 민중가수의 전설로 불리는 '우디 거스리'에게 영향을 받았고, 20대 초반 그의 연인이었던 수지 로톨로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청소년기와 20대 초반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시대정신이 충만한 가수가 되게 한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육체적인 힘도 그렇지만 마음을 쓸 수 있는 에너지도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기운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우선 그를 둘러싼 환경이나 그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해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때때로 상쾌한 기분으로 전환하기 위해 환기를 해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게 하기도 하고, 청소나 정리 정돈을 해서 청결한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좋은 음악을 틀어 놓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신다면 확실히 기분이 더 좋아지고 너그러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바깥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옮겨 본다. 무엇이 내가 좋은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지, 어떤 부정적인 환경이 존재하는지, 내 방을 청소하듯 내 마음과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을 청소해야 한다. 상대방의 잘못 때문에 내가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둘러싼 그 어떤 환경들 때문에 내 마음이 꼬인 것은 아닌지…,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