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WMC 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조선에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오늘날의 스키와 같은 조선 고유의 설마(雪馬)나 썰매가 있었다. 대부분 산악지대에서 사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북유럽계통의 근대 스키가 처음 전래된 것은 1903년 원산 신풍리에서 핀란드인 2명이 스키를 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교육은 1921년 일본의 이야마중학교 체육교사인 나카무라가 원산중학교에 전근 오면서 가져온 오스트리아식 스키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스키는 학교교육을 벗어나 일반인들에게도 스키를 보급하고 스키대회의 개최를 통해 근대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의 스키장은 동해안의 한정된 지역이지만 원산의 신풍리스키장을 비롯하여 함경남도 일대에 스키장이 만들어졌다. 그 이유는 지리적으로 적설량이나 설질 등이 좋아 스키장을 조성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부설된 경원선이나 함경선 등의 철도 고객유치를 위한 일환으로 동북지역에 스키장을 건설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크리스탈 리(Crystal Rie, 2018)의 일제강점기 스키인 최 훈(1922∼2016)선수의 기록에 의하면, 1929년에는 원산 신풍리 스키장에서 한반도 최초의 스키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참가자 대부분이 일본인 남성이었던 이 대회에 원산고등여학교 학생들이 참가한 사실도 있었다. 10명으로 구성된 여학생들은 원산 중학교 스키부에서 사용하는 스키를 임시로 대여하고 스키 지도를 받았고, 당시 스키복 대신 교복 차림으로 스키를 탔다고 한다. 이 학교는 오늘날 한국 스키사상 최초로 여자 스키인을 배출한 학교가 되었으며, 최초의 여자스키부를 결성한 학교로 기록되고 있다. 최 훈의 수집된 자료에는 1940년에 한반도의 스키 인구가 대략 6,000명으로, 이 중에서 조선인은 300여명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1930년대의 스키장은 일본인으로 붐비던 시절이었고, 그 사이를 뚫고 한국인 어린이들이 스틱도 없이 대나무 스키로 활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해방이후 대한스키협회는 전국규모의 스키대회를 지리산 노고단(1947), 태백산(1947), 아차산(1948), 울릉도(1949), 대관령(1949) 등에서 개최하였다. 1948년 남산스키장이 있었다. 조선신궁터를 없애고 스키장을 만들어 대회도 개최되었다. 지금 수준으로는 눈썰매장이었지만, 사진 기록 등을 보면 많은 이들이 스키를 즐긴 장소였다. 임경순(1930∼ ) 단국대 명예교수의 기록에는 워커힐호텔 인근의 아차산에서는 제2회 전국스키선수권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서울에서 열린 유일한 스키대회로 경신중학교 임경순이라는 선수가 알파인 활강(1분 10초 4)과 회전(1분 9초 8)에서 우승했다. 제1회 대회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렸다. 이처럼 스키인들은 경기장을 위한 장소를 찾는데 힘을 쏟았다. 이 당시 스키장은 눈이 많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의존해 장소를 찾아 다니며 대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관령은 최적지로 꼽혔고, '지르메' 지역이 스키대회를 운영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1950년에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지르메에서 스키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개최하면서 평창이 한국 스키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대관령 스키장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용평에 인공스키장도 생겨났지만 경영의 어려움이 있고, 용평에 이어 1976년에는 강원도 고성군의 진부령에 알프스 스키장이 개장되었으나 30여년간 운영되다가 경영난 등으로 2006년 문을 닫았다. 충청권에서도 1989년 국내 최초의 온천관광권의 스키장으로 문을 연 수안보의 '오로라벨리스키장'은 1995년 '사조마을리조트수안보스키장', 2014년 '수안보이글밸리스키리조트'로 명칭을 각각 변경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2017년 경매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3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에는 평창의 스키장마저도 코로나-19와 온난화 현상으로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허건식 WMC 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허건식 WMC 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그러나 과거 스키장을 찾아 다니던 스키인들의 노력은 분명 동계스포츠의 꿈이 있었다. 최근 북한에 마식령 신풍리 스키장이 부활했다. 국내 최초의 스키장이었던 신풍리 스키장은 태평양전쟁과 분단,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유명무실해졌었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12년 12월 신풍리 스키장 터에 새로 스키장을 건설하고 원산을 관광특구로 개발한 것이다.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을 목표로 스키장과 공항확장 공사가 2013년부터 시작되어 완공된 것이다. 동계스포츠의 꿈은 원산 신풍리 스키장 왕래가 자유로워진다면 스키 종목도 북유럽선수들을 뛰어 넘는 스키 강국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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