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빌려온 캠코더를 붙들고 오전 내내 씨름했다. 며칠 전에 사용법을 열심히 배웠건만 한두 가지 빼고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간신히 기억을 되살려 촬영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삼각대에 캠코더를 장착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올려놓긴 했는데 고정되지 않는다. 30분 정도 끙끙대다가 결국 아들에게 전화했다. 무엇이든 모르면 힘들고 알면 너무나 쉬운 법, 아들의 말 한마디로 1초 만에 해결했다. 기쁨보다는 허망에 가까운 웃음이 나왔다.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내 힘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기록활동가 양성 교육을 받으면서 영상 제작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대상으로 삼는데 글이나 사진은 물론 영상을 제작해서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부분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다양한 영상 제작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차례 기초교육을 받았고 얼마 전에는 '3분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여기에선 영상 기획과 촬영, 편집까지 배우고 있다. 한 손에 쏙 잡히는 모델의 캠코더는 내게 신세계를 선물했다. 기타를 처음 가졌을 때처럼 설레고 신났다.

캠코더를 둘러메고 미호천 제방 근처에 있는 민수 씨네 소나무농원으로 향했다. 과제 영상을 찍기 위해 민수 씨를 인터뷰하는 날이다. 농원 대부분이 몇 년 뒤에 들어올 농수산물시장 용지로 수용될 처지에 있다. 농원 주변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해갔다. 근처 도로가 확장되고 여기저기에서 토지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누구네 땅이 얼마 올랐다더라 하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민수 씨 농원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의 절반은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붉은 흙살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가 뽑혀 나간 흔적이다. 한쪽에는 아직 팔리지 않은 소나무들이 무심하게 서 있다. 자신들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빛을 받아 푸르기만 하다. "농원에 쏟아부은 세월이 20여 년 되었는데 막상 이곳을 정리하려니 심란하네요." 민수 씨는 처음 농원을 차릴 때 힘들었던 일, 몇 가지 모험을 시도한 일, 마을 사람들과 좋았던 일 등을 회상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아있는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바라보는 민수 씨의 눈은 먼 곳으로 시집가는 어린 딸을 쳐다보듯 촉촉하다. 1년 뒤 이곳을 떠나야 하는 민수 씨는 정성 들여 키운 소나무를 마을마다 필요한 곳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마무리와 새 출발을 동시에 앞두고 있는 그의 마음에서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엿보였다.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김애중 청주시 기록활동가

무난하게 촬영을 마쳤다. 함께 이야기 하는 동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과제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이제 관심 밖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처럼 떠올릴 수 있었기에 잔잔한 감동이 내 마음을 울렸다. 민수 씨의 새로운 출발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또 한 편의 멋진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추억이 쌓이듯 사람이 살아간 자리에는 이야기가 남는다. 사랑의 추억은 어느 순간 잊히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세월 따라 유유히 흐르는 미호천 강물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키워드

#기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