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 명예교수

화란춘성(花爛春盛), 그야말로 꽃이 만발하고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렇게 좋은 시절, 4월 20일 곡우(穀雨)이다. 또 올 해 곡우도 42회 장애인의 날이 같이 들었다.

곡우는 1년 24절기 중 여섯 번째 드는 절기로, '봄비가 내려서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주에 내린 봄비로 온갖 식물의 새 순이 돋아나 생동감을 준다. 겨우내 민낯으로 추위를 견뎌온 나무들이 연록의 세상을 열고, 따스한 봄빛으로 풀린 대지에는 수없이 많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춘설에 피었던 매화꽃이 지면서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 목련 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푸른 하늘에 높이 나는 새도 흥이 난 듯 활기차고,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이래서 곡우는 따뜻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새 생명의 절기이다.

농촌에서는 가장 중요한 벼농사 풍년을 기원하며 볍씨를 담가 못자리를 만든다. 예전에는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면 농사를 망친다고 하여 경계하였다.

또 곡우 절기에 나무에 오르는 물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좋은 수액을 구하기 위해 명산을 찾아가기도 했다.

대단히 귀하고 좋은 차로 알려진 녹차도 곡우 전에 잎을 따서 만들면 '우전차'요, 곡우날에 만들면 '곡우차', 그리고 곡우 이후에 만들면 '우후차'라고 했다.

곡우를 기준으로 차 이름을 달리 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똑 같은 나뭇잎을 따서 만든 녹차인데도 이 세 가지 차의 맛과 향이 다르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곡우가 되면서 반가운 소식도 전해 온다. 아직 코로나19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 거리두기 지침을 없애는 등 곧 포스트 코로나시기로 전환될 것 같다.

몇 년간 위축되어 못했던 각종 축제도 다시 열릴 것 같다. 차디찬 겨울을 버텨 자라는 보리가 익어갈 때 쯤 되면 모든 이들이 새로운 활력으로 여름을 준비하고 결실의 가을을 기대할 것 같다.

5월 10일에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6월 1일에는 전국지방선거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길어지면서 세계의 안보와 경제가 위협받고 있는 심각한 국제정세 속에 이루어지는 매우 중요한 정치 변화기이다. 이런 관점에서 올 해의 곡우에 무엇을 심을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곡우에 가물면 석자가 마른다'는 곡우 속담이 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이 말라 농사를 망치듯이, 인정이 가물면 민심이 마를 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했다.

곡우에 들어 있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면서,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한 사회적 인식을 새로 심어야 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꿈과 기대를 가지고 인생을 건 다문화 가정에 더 큰 관심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극도의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정책 씨앗도 더 많이 심어야 한다.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 명예교수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 명예교수

8년전 4월, 수많은 학생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바다에 꿈을 묻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통해 얻은 귀한 씨를 다시 심어야 한다.

곡우를 보내고 맞이할 입하 절기 5월에는 근로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소중한 가족의 사랑과 자비를 심어야 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정신이 드높아 질 수 있는 큰 씨앗을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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