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서 "정부와 국회 책임있게 나서야" 대책 촉구

'노근리 사건' 유족들이 15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명하고 정부와 국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윤여군
'노근리 사건' 유족들이 15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명하고 정부와 국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윤여군

[중부매일 윤여군 기자]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총격으로 피란민이 희생된 충북 영동군 '노근리 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기각 판결이 나자 즉각 유감을 표명하고 정부와 국회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노근리사건희생자 유족회(회장 양해찬)는 15일 노근리평화공원에서 지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보다 폭넓은 법리해석을 통해서 피해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해 줄 것을 기대했으나 이번 원심 확정 판결에 아쉬움을 표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유족들은 "사실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배·보상은 사법부의 판단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일이다"라며 "한·미 양국 정부는 엄격한 진상조사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인정한 바 있으며, 2004년에는 한국정부는 노근리사건 특별법까지 제정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근리사건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배·보상은 지금까지 외면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과 위로 조치는 역사적 과오에 대해 국가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 역사적 정의에 관한 문제이다"라며 "본질적으로는 노근리사건의 발생 원인이자 배경이 되었던 사격명령이나 다름없었던 '피난민통제지침'을 한미양국 정부가 공동 결정함으로써 발생한 명백한 인권침해사건으로 노근리사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국가책임여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고 규정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국정과제중의 하나로 앞세우고, 지난 2021년 12월, 제주4·3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4.3사건특별법 개정을 의결했고 지난 2022년 6월 1일부터 시행을 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는 4.3사건특별법 개정안과 거의 동시에 국회에 제출했던 노근리사건특별법 개정안은 심사조차 하지 않았고,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며 "결국 문재인 정부는 똑같이 대한민국 국민인데도 4.3사건 피해자와 노근리사건 피해자를 차별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양해찬 회장은 "역사의 상처를 입은 국민들에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일은 여·야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책무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에 관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 바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양 회장은 "더 이상 고령에 이른 피해자들이 법원으로 국회로 거리로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법원의 냉혹한 판결 앞에 고개를 떨구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책임있게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29일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철로와 쌍굴다리 일대에서 수많은 피란민이 미군의 사격에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정부는 2005년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해 63명을 피해자로 확정했다.

이후 노근리 사건 유족 17명은 2015년 5월 국가가 어떠한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며 합계 2억5천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미군이 한국에서 주민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국가가 배상하도록 한 주한미군민사법을 이 사건에 적용해야 하고, 경찰 또한 사건 발생 하루 전 일방적으로 철수해 직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지만 1·2심은 "희생자들이 노근리 사건으로 사망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주한미군민사법 부칙상 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고, 부칙을 넘어 유추 적용할 수도 없다"며 정부 손을 들어줬다.

지난 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노근리 사건 피해자 유족 1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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