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성범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공무원 시험 후 임용 전에 돈 몇 푼과 짐 조금을 가지고 제주도로 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이 휴가가 내가 간 휴가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입은 옷을 제외하곤 지갑 하나와 휴대폰 충전기 하나가 전부였다. 물론 불편했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쾌적하고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처럼 짐 없이 떠난 여행이나 휴가가 왜 유독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일까? 이는 휴가의 본질이 '비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휴가를 의미하는 영어의 Vacation(베케이션)이나 프랑스어의 Vacance(바캉스)는 라틴어로 '바카티오(Vacatio)'자유롭다, 텅 비어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단어다. 고대 사람들은 휴가를 비어있는 상태로 가서, 새로운 채움을 얻고 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제주도 휴가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휴가의 본질은 비움에 가까운데,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은 되레 휴가를 갈 때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떠나기 부지기수다. 내가 짐을 이끌고 가는 휴가가 아니라 짐이 나를 이끌고 다니는 휴가를 보낸다. 주객전도의 휴가를 보내면 결국 휴가도 지친 일상의 연장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지친 상태로 다시 일상에 복귀한다면, 휴가를 떠나는 게 무용지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짐이 없이 떠나는 휴가를 주변인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곤 한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떠나는 휴가는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장점은 나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보살피는 휴가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일상에 치여 많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산다. 적어도 휴가만큼이라도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휴가를 떠나며 짐이 한둘 쌓이다 보면, 그 짐들을 신경 쓰느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된다. 짐을 최소화하여 비운 상태로 휴가를 간다면, 그만큼 온전히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것들을 채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장점은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고물가 시대를 보내고 있는 요즘, 휴가를 가는 것도 부담이 되는 실정이다. 휴가는 평소보다 많은 지출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을 비우고 휴가를 갈 계획을 세운다면, 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새 옷이나 신발을 사지 않고, 있는 옷과 신발로 휴가를 갈 생각을 해보자. 휴가 비용이 생각보다 크게 들지 않을 것이다.

배성범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배성범 청주시 서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세 번째 장점은 환경친화적인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휴가철만 되면 피서객들의 쓰레기로 인해 휴가지가 더럽혀진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짐 중에서도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 짐을 많이 가져갔다가, 그 짐들을 다시 가지고 돌아오려 하니 귀찮은 마음에 그냥 버리기 때문이다. 휴가를 떠나기 전, 자잘한 일회용품이라도 정말 필요한지를 생각하며 짐을 간소화해보자. 생각보다 환경 보존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짐이 가득한 휴가를 갔었다면, 적어도 이번 휴가만큼은 적은 짐으로 떠나보자. 비움을 통해 또 다른 채움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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