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운전대를 잡으면 많은 사람이 때때로 포악(暴惡)해진다. 평소 상냥하거나 평범한 말씨의 소유자가 운전하는 순간 욕쟁이로 돌변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이럴 때 서로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하면 무작정 차를 세우고 삿대질해가며 언쟁을 벌이거나 멱살을 잡는 등 신체적 싸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일에 처하면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뒤따르던 차량 운전자마저 화가 난다.

운전 도중에 뭔 난리라도 났는가? 도대체 왜 이런 천박하고 볼 성 사나운 일이 벌어지는가?

차선위반, 저속 운행, 과도한 경음기 사용 등 가벼운 짜증 거리부터 오토바이 곡예 운전, 진로방해, 칼 치기 끼어들기, 부당 추월 등 다양한 사고 유발요인 때문이다. 본인도 상대에게 눈살 찌푸리게 하거나 욕먹을 짓을 하면서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닥치면 본인도 상대와 다르지 않다. '내로남불' 격이다.

차량 운전 중 화나게 하는 것이 또 있다. 운전하다 보면 승용차 뒤에 붙인 스티커나 화물트럭에 쓴 문구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스티커다. 문구로만 보면 참으로 감사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양보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일까. '아니다'가 대부분이다. 감사의 표현은 빙산의 일각이다. 양보를 강요하거나 거부하면 일내겠다는 협박이자 강요다.

상대 운전자의 내부 사정을 모르니, 이 정도는 그나마 귀엽게 봐 줄 만하다. 특히 119구급차, 불자동차, 헌혈 운송차 등은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고, 면허증 잉크마저 마르지 않는 초보운전자의 경우 운전이 서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정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문구도 많다.

'우리 애가 사나워!' 시비 걸면 애가 개처럼 물어뜯겠다는 말인가? 게다가 반발까지. '차 안에 소중한 (험상궂은 동물 그림) 있다. 조심 하슈!' 문제가 생기면 찍소리 말고 그냥 가라는 공포감 자체다. '주먹 쎄요.' 주먹깨나 쓴다고 과시한다. 운전자가 조직폭력배인가?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까칠한 표현이 화나게 하고, 정말 아이가 타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다. 문제가 생겨도 감히 시시비비 따지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라는 소리 없는 공갈 협박이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이런 가운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문구가 있다. 25 톤 화물트럭 뒤에 쓰인 "난 틀렸어, 먼저 가!"다. 추월하거나 운행에 전혀 지장을 줄 생각이 없는 등 여하튼 당신의 운행에 전혀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뒤따르는 차량 운전자가 추월하거나 끼어들고 싶으면 언제라도 양보하겠다는 배려의 심성이다. 단지, 낮춤말을 사용한 게 흠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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