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현 칼럼] 한기현 논설고문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지난달 8일 80년 만의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서울과 중부지방을 물바다로 만든 기상 이변도 추석이 다가온 것을 알리듯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다.예년보다 이른 6월부터 시작돼 한 달 이상 지속된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게 만든 살인적인 무더위도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를 기점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아침, 저녁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돈다.

하지만 올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가 같아라'는 속담과 달리 소비자 물가 폭등과 수해 등으로 예년보다 썰렁하게 보내야할 것 같다.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인 6.3%를 기록했다.상차림 비용이 작년보다 10% 이상 올라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농민 주름도 깊어졌다.농산물 가격은 쌀만 빼고 다 올랐지만 이상 기온으로 인한 역대 최악의 흉작으로 생산량이 급감해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전국 최고의 대추 산지인 충북 보은은 이상 고온으로 평년 수확량의 30%에 그쳐 오는 10월 14일부터 23일까지 예정된 축제 개최가 불투명하다.대추 농가는 올초 연합회 차원의 판매 가격 결정으로 흉작에 따른 추가 인상이 불가능해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반면 쌀 가격은 지난해 대비 23% 이상 폭락해 농업인 단체들이 정부에 쌀 시장 격리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추석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성수품을 공급하고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을 최대 투입하기로 했지만 화난 민심과 농심을 돌릴 수 있을 지 확실하지 않다.

이에 시민들 사이에서 간소하게 추석을 보내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차례나 성묘를 간소화하고 가족 나들이를 즐기는 방향으로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다.

유교에서도 본래 기제사만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며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명절에 자손들만 음식을 먹은 것이 죄송해 조상께 음식을 올리면서 제사상 문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제례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국학진흥원은 "추석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조상에게 인사를 드리는 세시풍속"이라며 "설날엔 떡국, 추석엔 송편을 올리고 식사인 나물, 탕, 국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제철 과일과 포, 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퇴계 이황 선생 종가는 제사상까지 단출하기로 유명하다. '간소하게 차리라'는 집안 어른의 가르침 때문이다.17대 종손인 이치억 성균관대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은 "추석엔 원래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다.정말 아무것도 안한다.가족들이랑 근교로 나들이를 간다"고 말했다.

한기현 논설고문
한기현 논설고문

그는 "원래 예는 원형이 없다.처음부터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마음을 따라 하다 어떤 시점에 정형화된 것이다.우리가 전통이라고 믿는 제사도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정형화돼 따를 필요는 없다.형식보다 중요한 건 예의 본질인 성찰"이라고 강조했다.

올 추석은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려 명절 증후군 문제를 해결하고 잘못 알고 있는 명절 문화도 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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