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하숙자 /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

지난 해 11월에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장애 당사자들과 일본의 자립생활센터 연수를 다녀왔다.

두 곳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하여 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 나누고,그곳의 활동들을 살펴보고 왔다.

연수를 통해 느낀 바는 이들은 철저한 ‘당사자주의’로 사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당사자주의란 장애당사자의 경험을 중요시하고 당사자가 결정하며 당사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른 비장애 전문가가 정책을 만들고 장애인은 참여만 시키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가 주민으로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정부나 지자체에 요구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복지 개념과는 다른 자립생활패러다임과 함께 당사자 주의는 장애인운동의 중요한 이념이며 철학이고 운동이다.물론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도 당연히 중증장애당사자들이다.

이러한 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자립생활센터가 일본전역에 200여개소가 있고 매년 10여 곳 씩 늘어난다고 한다.

지난해 10월말에 ‘자립생활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해 이러한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동경 하치오지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휴먼케어협회’의 나카니시 대표는 근이양증으로 대부분의 활동을 휠체어에서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 분이다.

1985년에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을 경험하고 최초로 일본에 맞는 자립생활센터인 휴먼케어협회를 설립하셨고, 90년대 말에 우리나라에 자립생활운동을 전하신 분이다.

나카니시 대표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활동보조인과 함께하는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주부들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주부들은 살림솜씨가 능숙해 장애당사자가 원하기 전에 알아서 도와주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녀를 양육한 경험으로 당사자를 애기취급하거나 동정을 하는 등원치 않는 부분까지 손을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는 ‘당사자의 실패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경험이 적고 능숙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맛이 없더라도 당사자가 요구하는 방법으로 할 수 있어서 적절하다’고 말한다.

주부들은 고령자의 활동보조인으로 적절하다고 했다.

또 다른 분교구의 자립생활센터 ‘스튜디오분교’에서 간담회를 하는 동안 중증활동가들의 활동보조인들은 그림자처럼 뒤에 앉아있었다.

우리 참가자 한사람이 ‘활동보조인이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는지 듣고 싶다’고 하니 그곳 사무국장이 “이 간담회는 당사자들이 이야기하는 곳이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당사자주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활동보조인도 우리의 자원봉사자 의미와 유사하지만 내용상 큰 차이가 있다.주체가 당사자가 되고 당사자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법으로 보조하는 것이 활동보조이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주체가 봉사자이며 하고 싶을 때, 혹은 할 수 있을 때 역량 껏 최선을 다하고,보람도 봉사자가 갖는다. 겉으로 보기에 유사한 개념 같지만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활동보조인은 말 그대로 그림자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당사자 주의는 필수적이다.사회복지분야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시대의 모든 정책과 제도는 주민본위의 주민의 관점으로,주민의 손으로 만들어 가야한다.

노인과 관련된 것은 노인당사자가,여성과 관련된 제도는 여성이,아동이 관련된 제도는 아동의 관점으로,장애인이 관련된 것은 장애당사자의 참여가 없으면 안된다.당사자주의는 진정한 평등사회 구현의 기초이다.

▶하숙자 소장은
여성,환경,아동,장애,평화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평등한 사회,건강한 사회,평화로운 사회를 꿈꾸며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는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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