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최근 정년퇴직 후 일자리를 구한 선배에게 명함(名銜)을 받았다. 이름과 회사, 직위 등을 담고 있어 평범했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책임연구원.'이란 직위다. 그의 이력을 알던 터라 직위가 의아스럽게 여겨졌다. 게다가 그의 회사가 학술, 조사 등의 연구소(硏究所)와는 동떨어진 택배회사여서 더욱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임연구원인데, 회사는 대신택배 이네요. 뭘 연구하시나요. 코로나19가 택배업계에 미친 영향, 국내외 물류동향 같은 거?"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홍보를 담당하고 있어. 연구소와 관계없어. 하지만 직위만 그려." 정말 의외였다. "홍보에 연구할 게 뭐가 있다고 연구원이라 하지." 그는 덧붙였다. "우리 직위는 대부분 연구위원, 책임, 수석, 선임, 연구원이지. 타사의 과장, 부장, 계장, 주임, 대리 등과 같지."

'연구'의 한자어를 분석해 보면 '硏'은 '평평하게 갈다, 문지른다.'는 뜻이다. 자연석을 평평하게 가는 작업은 은근과 끈기를 요구한다. '究'는 '구멍 혈(穴)'과 '구부린 팔을 뜻하는 아홉 구(九)'가 합쳐진 글자다. 횃불을 든 팔을 구부려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는 형상이다. 돌을 다듬어야 좋은 석재[벼루]가 되고, 동굴은 몸을 구부려 들어가 횃불로 밝혀야 살만한 곳인지를 안다.

이 회사는 2009년 직위를 연구소 체제로 바꿨다. 사유역과 상상력이 충만한 오흥배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몸만 움직여서 일한다면 자기는 물론 회사발전도 없다. 생각을 보태서 완성도 높은 업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생각으로 일을 찾아 만들어서 해야 한다." 오 회장의 지론이다. 마치 새로운 연구물을 밝혀내는 연구처럼 업무도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직원들이 이 지론에 부응했다. 연구원 직위는 외적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내적으로 사기진작에 한몫한다. 처음 직원들이 명함 내밀기를 저어(齟齬)했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건네고 있다.

워라밸 [work & life balance]도 좋고, 저녁이 있는 삶도 좋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 시간만큼은 창의적, 능동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무한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 '선사후행(先思後行)'이어야 '발상의 전환(Copernicus revolution)'이 가능하다. 몸이 아닌 뇌를 치열하게 써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개인적이든 업무적이든 다르지 않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통념을 타파해야 그 너머의 'out of box', 창의적 발상을 통한 창조와 위기경영이 발화한다. 이 회사 명함이 이의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의 결과를 빚었다. 쌀 배달로 시작한 이 회사는 2대째 가업을 이은 창립 66주년의 우량 향토기업이자 명문 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사 명함은 여태 받아 본 명함 중 시사하는 바가 가장 크고 타 회사가 본받을 만한 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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