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나영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연히 탄 마차로 1890년대 후반과 1920년대의 프랑스로 시간 여행하는 소설가 '길'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크게 두 유형으로 갈린다. 주인공 '길'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는 사람과 '길'이 만나는 인물들을 보며 '어! 저 사람은?', '어! 저 배경은 ?' 이란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다. 전자는 영화의 표면적인 이야기를 보는 사람이고 후자는 각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숨은 의미를 보는 사람이다. 두 유형을 나누는 가장 큰 요인은 인문학적 배경지식이 아닐까 싶다. 어느 누가 낫다는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인문학적 배경지식을 가진 자는 영화를 보는 시선이 방대할 것이며 이는 배경지식이 시선의 범위와 깊이감을 좌우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예컨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25살 청년 시몽이 14살 연상인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을 때, 14살 연상을 사랑한 작곡가 '브람스'를 통해 '당신을 좋아해도 될까요?'를 묻는 섬세한 메타포를 읽을 수 있는지처럼 말이다.

앞서 말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제목에 왜 하필 작곡가 '브람스'인지 알려면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의중을 찾고, 내용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고전(古典)을 고전(苦戰)하지 않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을 파악해야 할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를 문헌정보학적 용어로 정리하자면 '메타데이터(데이터의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다.' 메타데이터의 축적을 위해서는 정제된 자료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취향과 생각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나의 것으로 체화해야한다.

오창호수도서관은 2021년부터 성인 독서프로젝트 '천일백서'를 전개하고 있다. 해당 독서프로젝트는 천일동안 도서관에서 엄격히 선정한 백권의 도서를 읽는 장기 프로젝트다. 도서관에서는 총류부터 역사까지 다방면의 주제 도서를 엄격히 선별하였으며 잘 읽히지 않는 고전(古典)의 경우 독서지도 강사와 함께 천천히 접근할 수 있도록 만남을 운영해 해당 도서의 배경지식을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깊고 꾸준히 읽어 인문학적 배경지식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천일백서'는 메타데이터를 만들어가기 적합한 프로젝트다.

지나영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지나영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가을이다. 선선해진 날씨에 괜히 부쩍 외롭고 감성이 풍부해지는 계절이다. 허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엔 고전 읽기가 적합하지 않나 싶다. 오창호수도서관에서 마련한 '천일백서' 선정도서를 훑어보고 특강으로 체화시켜 그 시절 풍부한 수식어와 뜨거운 열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어디가서 '어? 이 메타포는 책에서 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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