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아내와 유리문을 열고 테라스를 한 바퀴 돌아온다. 몸이 긴장하고 있다는 표시다. 내 자리로 돌아와 보니 하나둘 함께 할 이들이 출입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맨 앞 책상에 유인물을 펼쳐놓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10시가 되니 띄어 앉기 강의실이 꽉 차는 느낌이다. 한 시간 반 동안 이분들과 내 얘기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책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지만 작가라는 것과 독서에 대해 조금 의견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해 어제 저녁에 메모를 해 두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기록해 놓고 보니 밋밋하다. 늘 미리하자고 채근을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내는 내 부탁대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가 참여하는 독서회에서도 두 회원이 왔고 동화 선생님과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님도 참여하셨다.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 진행이 힘들지는 않았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좀 더 이야기를 했다. 일정을 마치고 몇 사람의 요청으로 서명을 해주고 사진을 찍었다.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다. 나를 기억하고 찾아온 귀한 분들을 소홀히 예우한 것만 같다. 자주 뵙긴 하지만 가족을 핑계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목사님과 점심도 같이 하지 못해 민망하다. 개인적으로 스승으로 대하는 분에게도 실례가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하지 않아 내가 속한 교단과 문학회에서 한 사람도 참여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분들의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각자 일에 바쁘니 마음 가는 이들이 모이는 게 좋을 듯도 하다. 어린아이 둘과 식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딸과 사위의 일상이 보이는 것 같다.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들이 성장하는 것이니 어쩌랴. 한낮의 햇살이 너무 뜨겁다. 차를 타러 가는 길에 큰 아이가 넘어져 이마에 피가 맺혔다. 끝까지 탈이 없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이는 큰 소리로 서러운 듯 운다. 아프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을 게다.

오늘 한 일이 강렬하거나 크게 역동적이진 않았지만 오래 기억 속에 남으리라. 삶의 후반부에 선물처럼 찾아온 글쓰기가 또 어떤 곳으로 나를 이끌어갈지 모른다. 마음 속 생각을 고백하듯 드러낸 '내 하는 일에 끝까지 가보고 싶은 것이 내 바람이다.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 끝에서 울타리를 만나면 넘어가 보고도 싶다.' 나는 심정적 자유인이니까….

요 며칠 사이 내 삶에 여러 일들이 많았는데 글쓰기를 '내 일상의 기록' 이라 여기면서도 많은 일들을 놓쳤다. 게으름이 스며든 게다. 귀뚜라미가 담 벽에 바짝 붙어 "클릭해, 클릭해" 소리치며 울고 있는데, 애써 무심한척 하고 있는 게다. 덥다는 핑계로 자리에 누워 TV 채널만 돌리고 있었다. 마음으로는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내일 일은 내일하자는 합리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어떻게 이 게으름을 이겨낼까? 경험으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할 테니 외부 규제가 조금은 있어야 하리라. 팔월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꽤 여럿이다. 베짱이의 일처럼 개미에게는 일로 보이지도 않을 것들이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자. 이제 그럴만한 나이도 지났으니 스스로 정한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자. 때로 꾀가 나면 오늘처럼 더운 날은, 쉬기도 하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