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최근 국제경제기구들의 세계 경제 진단이 매우 어둡다. 세계은행(WB)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정책이 내년 세계 경제를 경기후퇴 국면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부각시켰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에 가세해 물가 상승세가 가파르고 공급망 차질은 여전하며 금융환경 경색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세계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한 소비 감소보다는 생산 증대 방안을 제시하면서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 조치를 주문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충격,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공급망 혼란과 에너지난 등 갖가지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계 경제 환경은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어떤 충격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꼬리를 물면서 악순환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상황 속에서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등 복합적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산업에서도 미국 내에서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특혜를 주는 '자국 보호주의' 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른바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의 대상인 'BBC(바이오, 배터리, 반도체칩)' 분야가 우리나라의 핵심 전략산업이라는 데 있다. 또한 충북이 애지중지 육성해온 주력산업이기도 하다.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 통제와 첨단 산업 투자 제한,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내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 제공, 미국에서 발명된 생명공학을 미국에서 제조하도록 하는 행정명령 등은 그동안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 가담해온 국내 및 지역 기업들에게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논리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하며, 미국 가정을 위해 가격을 내릴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세계 어떤 곳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 이유를 경제 안보에서 찾고 있다.

미·중 패권 갈등이 치열한 가운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극단적 선택이라 하더라도 미국 제조업의 부활만을 외치는 것은 초강대국으로서 궁색하기만 하다.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 취할 보복 수위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별 각자도생의 생존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가 코로나19 이후 넥스트 노멀로 꼽았던 '지역화'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커버스토리에 등장했던 '생존 비즈니스(The business of survival)'도 상기해야 한다.

소규모 개방형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늘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처방으로 수출입 다변화, 공급망 안정화 등 체질개선과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내놨다. 중요한 것은 복합 경제위기 시대를 대비하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얼마 전 출판된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교수의 저서 '회복탄력 사회'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 처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복잡한 까닭에 효율성 위주의 '적기대응 전략'보다는 장기적 유연성과 회복력을 중시하는 '비상대응 전략'의 상시화를 조언했다.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지금 상황은 엄중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국가와 지역, 기업에 위기가 닥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난관이 슬기롭게 극복되도록 '기정학(技政學)'을 토대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 및 지역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정교한 준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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