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10월 3일은 제4354주년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4대 국경일의 하나로 서기전 2333년(戊辰年),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왕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라 이름을 고조선이라 하여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개천절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 이 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甲子年: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고조선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천손민족인 한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됐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니산(摩尼山)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등에서 각각 행해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한민족의 명절인 개천절은 만주의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대종교(大倧敎)에서 비롯한다. 즉, 1909년 1월 15일 서울에서 나철(羅喆: 弘巖大宗師)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 다시 敎門을 엶)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상해임시정부가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상해와 충칭 등지에서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해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꿨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꿔 거행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하던 경하식은 국가적 행사에 맞춰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오전 6시에 행하고 있다.

이 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하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모단체들이 주체가 돼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한민족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국조 단군을 폄하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해 문제가 됐으며 최근에는 국가 행사인 개천절 경축식에 대통령 대신 국무총리가 참석해 축사를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제4354주년 개천절에는 모든 국민들이 천손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가정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경축식과 제천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경축분위기를 최대로 살려 복합적인 국가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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