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동빈 사회부 차장

지난해 4월 특수협박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A(52)씨는 3개월 후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 B씨를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경찰조사를 받게 된 A씨는 앞으로 B씨를 찾거나 연락하지 않기로 합의한 후 풀려났다. 폭행에 대한 죗값을 치를 경우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었지만, B씨의 선처로 실형을 면했다.

그런데 선처 이후 B씨는 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A씨는 같은 해 9월 B씨의 집을 찾아간 것을 시작으로, 총 189회에 걸쳐 B씨와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B씨의 차단 등으로 직접적인 연락이 어렵게 되자 A씨는 휴대전화 데이터를 선물하거나 돈을 입금하는 방식으로 스토킹을 지속했다.

결국 B씨의 신고로 A씨는 올해 3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은 공소기각(9월 28일 선고)으로 결론 났다. 집행유예 기간 스토킹범죄를 반복했지만 A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A씨가 처벌을 피한 이유는 스토킹처벌법 제18조 3항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로 불리는 이 조항 탓에 수많은 스토킹 범죄자들이 A씨처럼 처벌을 피하고 있다.

처벌불원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180도 달라진다. 가해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상을 보낸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다시 연락하지 않길 바라며 불안한 일상을 보낸다. 피해자가 기댈 곳은 '선처를 했으니 또 안 그러겠지'라는 바람이 유일하다.

신동빈 사회부 기자
신동빈 사회부 차장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반의사불벌 조항이 살아있는 한 법 취지와 다른 판결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처벌이 허술한 법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움츠리게 할 뿐이다.

신당역 살인사건 이후 스토킹처벌법 18조 3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국회는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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