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참 많이 걷는다. 걷기 시간이 하루 평균 백분 안팎으로 걸음 수로는 만 이삼천 정도다. 출퇴근하면서 딱딱한 도심 인도도, 시설녹지로 난 흙길도 걷는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주변을 걷는다. 퇴근 후 학교 운동장을 돌거나 하천 둑길을 산책한다. 걸은 지 6년이 넘었다. 걷는 시간이 길다 보니 독서는 뒷전으로 밀려있다. 하지만 얻는 것 더 많다.

애초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걷기가 이젠 일과가 되어 버렸다. '일삼아 걷는다.'는 얘기다. '운출생운(運出生運)'의 실천이다. '운(運)동화 신고 출(出)근하고 생(生)활 속에서 운(運)동한다.' '걷기만큼 가성비가 좋은 운동을 찾기 힘들다.'는 신조어다. 걷기는 빼기와 더하기다. 빼기는 체중감소,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 강하, 스트레스 해소 등이다. 더하기는 빼기에 따른 육체, 정신적 건강 되찾기나 확보다. 걷기는 '± 제로섬'이 아닌 '+'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더하기는 사유(思惟)다. 걷기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새로운 삶의 철학을 창출한다.'는 의미다. 걷기 철학자들, 페리파토스(Peripatos)들의 걷기는 어떠했는가?

걷기 철학자로는 니체가 단연 으뜸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걸을 때 탄생하지 않은 사유는 그 어떤 것도 믿어 선 안 된다." 니체는 독서하지 못할 때 걸으며 사유에 잠겼고 걸음을 멈출 때는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는 '호수와 바닷가를 걸을 때<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 발상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칸트는 정확히 정오 12시 45분에 같은 코스를 한 시간 걸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등의 착상은 걷기에서 비롯됐다. 근대 서양 철학의 경험론과 합리론을 비판하면서 종합해 낸 비판철학(경험에 근거하지 않는 사유는 공허, 이성적 활동에 따른 개념 없는 경험은 맹목) 역시 걷기 영향이 컸다.

루소는 "멈춰 있을 때는 사유에 잠기지 못한다. 걸어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 첫 철학 스승은 우리 발이다."며 하루 평균 30km를 걷곤 했다. 그에게 걷기는 철학적 삶 그 자체였다. 홉스는 걸을 때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잉크병과 펜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몽테뉴는 "앉아 있으면 사유는 잠들어버린다. 다리를 흔들어놓지(걷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유는 머리가 아닌 발이 한다. 사람들은 손으로 글을 쓰지만, 발로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다. '선보후사(先步後思)', 걷기가 먼저고 사유가 다음이다. 걷기는 인간의 최대 무기인 사유의 힘을 한층 더 강화한다. 오늘도 걷는다. 뭔가를 사유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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