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현 칼럼] 한기현 논설고문

128년 전인 1894년 충남 공주 우금치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동학농민운동의 최대·최후 격전지인 우금치는 죽창으로 무장한 3만여 명의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개틀링 기관포에 의해 몰살 당한 아픔의 현장이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 농민군은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 내정을 간섭하자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전북 고창에서 분연히 봉기했다.하지만 그해 11월 2차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수적 우세에도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대패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농민군은 분당 400발을 발사하는 일본군 기관포와 맞서 결사항전을 벌었으나 밀집 대형으로 돌진한 지휘부의 전술 부재와 무기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1만여 명이 몰살 당했다.전봉준은 우금치 전투 이후 동료의 밀고로 순창에서 체포돼 이듬해 교수형을 당했다.

우금치 전투 패배는 조선말 외세에 저항한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역사는 기록했다.조선말 역사서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명분과 의지가 전력까지 이길 수는 없었다.일본군과 관군이 고개 양쪽에서 회선포를 쏘자 한 방에 농민군 수 백 명이 쓰러졌다.관군 기록인 '양호초토등록'은 순식간에 우금치가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로 변했다고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기록했다.

정부는 외세에 저항한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고 농민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동학혁명 100주년인 1994년 우금치를 사적 387호로 지정했다.우금치 사적지와 1993년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동학농민혁명군 위령탑은 일본이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저지른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학생 등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방문객들은 SNS에서 허망하게 스러진 농민군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이 땅에서 외세가 득세하지 못하게 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일본은 오늘도 동학 농민군에 저지른 만행은 물론 임진왜란, 명성왕후 시해, 3·1 독립만세운동 강제 진압, 일제 강점기 36년, 위안부 강제 동원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철도 등 산업화 기반을 제공했다며 한반도 침탈을 미화하고 있다.

한기현 논설고문
한기현 논설고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역사의 준엄함을 일깨우는 명언이다. 그런데 최근 여당 대표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발언을 내뱉어 시끄럽다.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반대하자 구한말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서를 설명하며 "경박한 역사 인식으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말라.조선은 왜 망했을까.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그래서 망했다.일본은 조선 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식민사관이다.집권 여당 대표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기는커녕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해 윤석열 정부의 대 일본 외교 정책이 걱정이다.구한말 의병들과 항일 독립군들이 무덤에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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