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신규 확진자 62만1천328명, 재원 위중증 1천139명, 신규입원 2천82명, 사망자 429명 등은 지난 3월 17일 코로나19 관련 통계로 코로나19 발생 이후 국내 최다다. 신규 확진자 2만1천469명 재원 위중증 247명, 신규입원 94명, 사망자 32명 등은 10월 15일 코로나19 관련 수치다.

7개월 새 코로나19 기세는 수치가 말해주듯 약화함이 분명하다. 일부 전문가들이 다가올 겨울 추위에 코로나19가 무임승차할 가능성을 전망해 불씨가 남아 있지만 말이다. 이처럼 안심할 상황이 아니지만, 코로나19 기세 약화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3월 17일만 해도 국가는 물론 많은 국민은 심장이 콩알만 해졌다. 코로나19가 불특정다수인을 호시탐탐 노리며 인류 멸종의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국가는 방역을 강화했다. 마스크 착용, 30초 이상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사회적 활동과 감영 취약 시설 방문 자제, 백신 접종 등등. 그것들이 정신적, 물리적으로 국민을 통제했다. 국민은 싫든 좋든 국가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하튼 코로나19 관련 수치가 국민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이다. 통제수단으로는 코로나19 특보체제의 방송 등 언론, 개인 휴대전화, 대중교통, 의료 및 공공기관, 공문서 등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렇게 했다. 시도 때 없이 전방위적 코로나19 관련 통계를 살포한다는 얘기다. 이런 통제가 부지불식간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통계수치는 삶 방식을 지배한다. 아니 국가가 강요, 강제하는 게 맞다. 숫자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통계수치가 생활은 물론 사고까지 통제한다. 감히 무시할 수 없다. 수치가 증가할수록 삶의 영역과 질이 축소된다. 심지어 인권마저 국가에 저당해야 한다. 통계수치가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했다.

이 권력이 바로 '생명 권력(Brain power)'이다. 코로나19 관련 통계수치가 이 생명 권력의 지표이다. 생명 권력은 프랑스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가 처음 만든 용어다. 그는 "신체의 예속과 인구의 통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하고 많은 기술의 폭증을 통해 현대 민족 국가의 관행과 주민에 대한 국가의 규제"라 생명 권력을 정의했다. 인간을 관리, 통제하기 위한 힘의 기술로 '국가가 지니는 신체에 대한 권력'이다.

과거 군주들은 신민(臣民)을 '살려두거나 죽일 수 있는 권력[生死與奪權]'을 가지고 신민들의 재화, 생산물, 용역, 노동 등을 탈취하는 방식으로 주권 권력을 행사했다. 현대 국가는 국민을 '죽도록 두고 살리는 권력[코호트 격리]'을 가지고 최대한 생명을 활용하고 통제, 조절하는 방식으로 생명 권력을 행사한다.

생명 권력은 코로나19 등 각종 감염병으로 인한 펜데믹 시대에 그 위력을 발휘한다. 국가는 감염병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사회를 보호,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은 자연 영역이 아닌 정치 권력의 조절대상이 된다. 국가가 매일 코로나19 관련 통계수치를 적극적, 노골적으로 발표하는 이유다.

인간들은 부지불식간 생명 권력에 포획된다. 누가 감시하는 줄도 모른 채 원형 감옥의 죄수처럼 규율 권력에 신체가 포획된 지 오래된 인간들이 이제는 생명 자체도 감시, 통제당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는 규율, 생명 권력을 강화하고, 국민은 이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 채 익숙해진다. 국가는 강제하는 힘을 지닌 권력의 속성을 최대한 발휘해 국민 통제에 성공한다. 국민은 갈수록 국가의 통제와 간섭을 합리적이라 믿는다.

생명 권력에 포획된 사람은 노예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창살이 없는 감옥에 갇힌 죄수와도 같다. 더 큰 문제는 노예와 죄수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은 수동적, 피동적이고 자유의지(Free will)를 상실했다.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무색하다. 어찌 보면 생명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국가인 셈이다. 명색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인간이 국가 통제에 저항하기에는 국가권력이 너무 강하다. 인간은 국가권력에 길들어져 저항력을 잃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해방은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정치 권력과 규율 권력에다 생명 권력의 차꼬까지 찬 형국이다. 코로나19 약세에 따라 생명 권력의 차꼬가 풀리는 것을 기대하여도 좋을까? 정치와 규율 권력의 차꼬는 불가피하다손 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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