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참나무(진목:眞木)는 집합명사로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을 포괄한다. 쓰임새가 많아 유용하기 때문에 나무 중 진짜 나무라는 뜻이다. '도토리'를 열어 '도토리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서 소나무(29.7%:2020년 통계) 다음으로 자라는 활엽수(26.8%)다.

도토리는 초기 인류의 중요한 식량원이자 대표적 구황식품이었다. 고려 시대 이후 수령들은 가뭄에 대비해 도토리나무를 심었다. 조선 시대 홍만성은 자신의 『산림경제』에서 "도토리 껍질을 벗겨 쪄 먹으면 흉년에도 굶주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동의보감』은 "배고픈 것을 채우며 흉년에 대비할 수 있게 한다."라며 구황식품으로 도토리를 설명했다.

도토리나무는 그해 작황을 보고 도토리를 연다고 한다. 풍년이면 열매를 적게 열고, 흉년이면 많이 연다. 풍년에는 사람의 먹거리가 풍부해 짐승 먹이 정도만 열기 때문이고, 흉년에는 먹거리가 부족해 도토리라도 사람의 배를 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도토리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멧돼지와 곰이다. 다람쥐도 도토리를 먹지만 돼지나 곰만큼은 아니다. '저의율(猪矣栗)'은 '멧돼지의 밤'이란 뜻이다. 그만큼 멧돼지가 도토리를 좋아한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물어다 땅속에 묻는다. 타닌의 떫은맛을 줄이기 위함이다.

가을이면 참나무 산은 도토리를 채취하는 할머니들로 붐빈다. 다람쥐나 멧돼지들의 먹이를 싹쓸이할 정도다. 추운 날 아니 시도 때도 없이 멧돼지들이 도시 등을 습격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은 멧돼지 먹이를 강탈하고도 멧돼지를 유해조수라며 마구 포획한다.

내 집 인근 시설녹지에는 참나무가 많다. 해마다 도토리를 연다. 올해는 일부 도토리나무들이 아예 도토리를 열지 않았다. 풍년 때문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인간들이 수년째 억지로 도토리를 채취하기 위해 도토리나무를 패대자 도토리나무들이 번식까지 중단하는 극한의 처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바로 도토리를 열지 않는 반항이었다. 한마디로 연대시위다. 일부 나무는 무척이나 얻어맞아 상처가 심해 고사가 우려된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도토리 열기 거부는 인간중심주의(인간을 최고 가치 존재로 여기고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최우선 하는 관점)가 빚어낸 불상사이자 사고다. 인간은 도토리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미물에 지나지 않으니 마구 채취해도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망상이다. 서서히 인간이 자연환경에 보복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낫 도토리도 인간에게 보복하는지도 모른다. 이젠 세상에 대한 관점을 바뀌어야 한다. 자연환경의 가치를 중시하고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생태중심주의'로 말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생태중심주의에서 보면 도토리의 가치는 인간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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