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임선빈 / 수필가

‘산이 좋은 사람들’에게 1월은 특별한 산행이 된다.
산 정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준비한 약간의 제물을 놓고 시산제부터 지내게 된다.

처음 산행은 사량도 지리산이었다.그때를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봄이 시작되는 3월 중순이었지만,한차례 폭설 피해도 있었고 꽃샘바람이 매서웠다.

섬을 운행하는 여객선의 시간에 맞추려고 새벽 출발을 했다.날씨가 추워 내복을 입었고 긴소매셔츠에 두툼한 잠바를 걸쳤다.바지는 청바지였고 신발은 평소에 신던 밑창이 반들반들한 운동화였다.

커다란 보온병에 미역국을 가득 담아 손에 들었다. 점심으로 김밥과 주먹밥을 준비했는데, 나중에 풀어놓고 보니 너덧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소풍가듯이 따라 나섰다가 고생은 하였지만 웃음이 나오는 것은 가끔 산에서 나의 처음 산행 때의 모습을 만나기 때문이다.

육지와는 달리 기온이 높았고 산을 오를수록 반소매셔츠도 더운 날씨였다. 산행하기에 최악의 조건으로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다.내가 고생한 것 이상으로 함께 간 사람들도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위험한 구간을 지나 안전하게 산을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같이 간 사람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그 한번의 산행으로 평소에 데면데면하던 사람과 깊은 우의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자연과 가장 가깝게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했던 것처럼,닫힌 마음을 열고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살면서 쌓이기만 하는 사람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산 위에서는 순하게 풀어진다. 땀흘리고 걸으면서 나를 반성하고 필요한 만큼 길을 내어 주는 산의 넉넉함을 담게 된다.

걸음이 늦은 나는 일행보다 먼저 출발했다.처음에는 같이 출발을 하지만 뒤쳐지기 일쑤였고,일행의 발자국이 빨라지거나 아니면 나보다 앞서서 가면 마음이 먼저 빨라지게 된다.그래서 기본 걸음걸이를 잊고 서둘다 고생을 하게 되고 일행까지 여러 번 힘들게 한 후 가끔은 오늘처럼 먼저 출발하기도 한다.

정상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산,왜 오세요?”
“산,오래 살라고 오지.”
“산이 좋아서 오지요.”
“산,몰라 그냥 거기 산이 있어서…….”

바람도 없는 날,나무들의 묵언수행 중인 숲을 걸어서 일까? 털신을 신은 나이 지극한 이의 웃음이 햇살처럼 넓게 퍼진다.먼저 정상에 온 사람이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올라 온 사람이나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인다.

산이 거기 있어 좋은 것처럼, 산 아래의 삶도 살아있음으로 모두 편안했으면.높고 낮음이 없는 평화로운 표정을 읽으면서 시산제 장소인 문수봉으로 향했다.

▶임선빈 수필가는

무심천 동인과 충북작가회의 회원,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보은민예총 감사를 맡고 있다.수필집 ‘꽃 피는 봄이 오면’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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