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2018년 가을 나는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서 한국행 편도 항공권을 사고 있었다. 변호사 시험 합격 발표를 앞뒀을 때보다 더 긴장한 상태였다. 항공사 직원은 내 여권을 살피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무언가 확인하였다. 내 심장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 만큼 커져갈 즈음이 되어서야 귀국 티켓이 발권되었다. 편도 항공권을 사는데 왕복항공권 몇 배가 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하였다.

이내 출국장의 출입국 심사담당 공안 앞에 섰다. 정해진 루틴대로 내 여권을 살피고 나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던 공안은 무방비로 내 큰 얼굴을 마주하고는 흠칫 놀랐다. 세상에 태어나 지은 표정 중 가장 선량한 표정을 하고서 체온이 전달될 정도로 공안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공안의 물러나라는 손짓에 나는 살짝 뒷걸음질을 쳤지만 잇몸이 드러날 만큼 해맑은 미소를 짐짓 지으며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점을 계속 웅변했다. 나의 소리없는 아우성 덕인지 공안은 별다른 태클 없이 여권에 출국허용 도장을 찍어줬다. 도장을 찍는 '찰칵'소리가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렸다.

눈앞에 검색대가 보였다. 몇 발자국만 더 나가면 자유다. 한발 한발 자유를 향해 다가가는 순간! 검색대 공안이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가슴이 쿵쾅댔다. '나대지마 심장아. 아무일 없을 거야.'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캐리어에서 라이터가 나왔는데 버려도 되냐고 물었다. "하오! 하오!"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아마 그들이 캐리어를 통째로 버린다고 했어도 나는 기꺼이 그러라고 했을 것이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검색이 끝나고 눈앞에 자동문이 열렸다. 화려한 면세점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평온한 얼굴들이 가득했다. 생전 처음보는 그리고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반가웠다. 발을 내딛으면서 긴장이 풀려 다리에 힘이 빠졌다. 10여일의 중국 억류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10여일 전에도 나는 푸동 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발권 데스크에서 비자가 없어진 사실을 알았다. 항공사 직원들은 여기저기 알아보다 나에게 '흔난콴'이라 말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너 큰 난관에 빠졌다', 의역하면 '너 X됐다'라는 뜻이다. 재발급 받기 전까지는 출국이 금지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기약없이 중국에 억류되었다.

상하이 시내로 돌아왔지만 비자없는 외국인을 받아주는 호텔이 없었다. 어제까지 눈으로 즐겼던 와이탄의 화려한 밤거리가 이제는 몸으로 느끼는 환경이 되었다. 출금 1일차 밤은 뜬눈으로 보냈다. 다음날 비자발급기관을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밍아', 'HELP ME'를 반복했다. 공안은 THAAD 문제로 한국인에 대한 정부 정책이 강화되어 돕고 싶어도 돕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빠르면 1달 안에 해결될 것이니 '돈 워리'하라고 한다. 말이야 말밥이야…

인맥을 총동원하여 여기저기 구조 부탁을 해놓고 뒷골목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TV를 보았다. 한국이 중국 어선에 기관포를 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양국관계는 더욱 경색되었다. 자연스레 나의 출국은 더 어려워졌다.

사람이란 동물은 극복하기 어려운 상항에 닥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자가 재발급되기 전까지 중국 곳곳을 떠돌기로 했다. 비자가 재발급 될 때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중국 내륙 깊숙이 방랑해볼 요량이었다.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우시를 거쳐 난징에 이르렀다.

'권선생입니까?' 난징대학교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북한식 억양을 가진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그를 경계했다. 남한 요인(?)을 납북하려는 북한 공작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는 조선족 고위급 공안이었다. 한국 지인의 부탁을 받고 문제를 해결 했으니 속히 상하이로 돌아와 비자를 받아 출국하라고 한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역시 '꽌시'의 나라. 고위직 공안이 개입하자 비자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재발급 되었다. 하지만 얼마 전 출국금지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끝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출국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강한 향신료로 요리된 중국 서민 음식이 입에 맞아지고 간단한 중국말이 조금씩 들리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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