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지금으로부터 30년전, 1992년 10월 28일은 대한민국이 '휴거'로 몸살을 앓았던 날이다. 초등학생 시절이던 당시 극명히 대비되는 두 가지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전날 하교시간 담임선생님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다른 하나는 10월28일 이후 TV뉴스를 통해 보도된 광신도들의 분노와 울부짖음, 허탈감에 휩싸인 모습이다.

"청주라서 더없이 행복한 1천460일이었습니다."

박상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가 4년간의 임기를 마치면서 남긴 말이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유의 달변과 더불어 그간의 성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풀어놨다. 그 중 유독 인상깊었던 것은 본인의 스케쥴표에 2022년 10월 28일을 '휴거'로 적어놓은 대목이었다. 그에게 휴거란 키워드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 대표가 재임했던 4년의 행보는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의 20여년의 역사에서 여러모로 유의미해 보였다.

대한민국 첫 법정문화도시 선정, 3년 연속 경영평가 최고등급 'S' 달성,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전국평가 1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 중에서도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오직 공예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로 치른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성공 개최'는 재단 역사의 큰 획을 그었다.

이와 함께 박상언 대표 개인적으로는 비수도권 최초로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돼 청주에서 '첫 대한민국 문화재단 박람회'까지 여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가 취임 이후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비전·전략체계 최초 구축과 행정관행 개선, 화이트 리스트 근절 등은 재단의 체질 자체를 바꿔놓는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성과다.

36년 문화행정가로 살아온 박 대표는 '예술가는 불가능한 것을 제시하고, 행정가는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프랑스 콜린느 국립극장의 감독 알랭 에르조그(Alain Herzog)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그간의 성과를 이어가야 할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의 갈 길은 멀어보인다.

충북문화재단의 경우 30여억원의 예산으로 충북지역 전체 시·군을 지원하는 12개 사업을 진행하는 반면,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2022년 본예산 규모만 89억, 출연금만 50억에 달하지만 정작 지역문화예술인 및 단체를 위한 지원사업은 미미한 수준이다.

예술인들이 모인 현장에서는 재단의 역할을 놓고 청주시의 기획사 혹은 대행사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안줏거리로 일삼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2023년 주요업무 현황을 살펴보면 주요사업은 청주공예비엔날레 개최, 청주문화재야행 등 9개지만 실질적으로는 23개 사업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는 거대 조직이다. 이 중 절반에 달하는 11개 사업은 위탁사업비로, 6개 사업은 출연금으로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공은 차기 대표이사인 변광섭씨에게 넘어갔다. 비전과 전략체계가 구축된 재단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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