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지금 상황은 날로 잘못되어가고 백성들의 기력은 날로 소진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권세 있는 간신들이 세도를 부렸을 적보다도 더 심한 듯하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권세 있는 세력이 날뛰던 시절에는 앞의 임금들이 남겨주신 은택이 어느 정도 다 하지 않고 남아 조정의 정치는 혼란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의 힘은 어느 정도 지탱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선왕들이 남기신 은택은 이미 다하고 권세 있는 간신들이 남겨놓은 해독이 작용을 일으켜 훌륭한 논의가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의 힘은 바닥이 났습니다.

오늘날 시사(時事)는 실로 이와 같으니, 10년이 못 가서 화란(禍亂)이 반드시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백 년의 사직과 천 리의 봉강(封疆)을 물려받으셨는데 화란이 닥쳐오려 하고 있으니 어찌하시겠습니까? 소신은 진실로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고 도끼로 목을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1574년 조선 성리학자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 일부다. 만언봉사란 임금만 볼 수 있도록 밀봉한 긴 글(11,600여 자)의 상소문이다. 이이는 1571년 청주 목사를 마치고 해주로 낙향한 뒤 경기도 파주 율곡 촌으로 돌아왔을 때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승정원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임명되었다. 조정에 돌아와 보니 나라는 부조리할 대로 부조리하고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동인과 서인 간의 붕당정치의 폐해가 극에 달해 나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지부상소(持斧上疏: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상소)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율곡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에 나섰던 셈이다.

448년 전 조선의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몇 년째 재현되고 있다. 급기야 율곡 사후 438년이 흘러 그의 백골이 진토가 되었지만, 그의 혼백이 소환될 수밖에 없다. 무소불위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가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국가 기강을 정립하기 위해서다.

'국가를 국가'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국가 위기가 빚어지고 있다. 국가가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풍전등화에 직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국민은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이 불가하다. 민족도 남북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국민의 정치적 이념마저 양분되어 대치 국면이 조장되니 앞날이 더 어둡다.

누구 하나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국가 경영을 책임진 정치인들은 사익과 당략에 푹 빠져 있다. 자기와 소속 당이 중심이어서 타협이란 그들 사전에 없다. 진영논리에 갇혀있다. 동인과 서인의 당파처럼 말이다. 국가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막강한 권력을 위임받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치를 위한 동력을 받기 힘들다. 개선과 혁신을 주저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가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과 통찰력이 크게 부족하다. 통치력이 국민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람[人]의 말[言]은 믿음[信]이 근본이어야 하나 통치자의 말은 믿음이 부족하다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돋운다.

국가 혼란을 부추기기는 더불어민주당도 만만치 않다. 이재명은 생뚱맞은 지역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더니 이젠 당 대표가 되었다. 어떤 모(矛)도 뚫을 수 없다고 자신하는 순(盾)을 두르고 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을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은 신물을 나게 한다. 본인은 득보다 실이 더 크고, 국가는 무법천지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게다가 줄서기에 나선 당패(黨牌)들도 절대 정의롭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다.

고대 중국 은나라 성탕왕(成湯王)은 세숫대야에 좌우명[盤銘;반명]을 새겨 놓고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 각성을 촉구했다. '일신일 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 새롭게 한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통치자는 물론 정치인들이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좌우명이다. 이를 무시하는 대통령은 노자(老子)의 네 가지 통치자 유형 가운데 최악인 '국민이 깔보는 자(其次 侮之)'가 된다. 이런 나라는 곧 망한다. 율곡이 만언봉사를 올린 뒤 18년이 지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말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가 작금의 나라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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