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동준 청주시 용암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몇 해 전부터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아닌 물리학적 관점에서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서야 짬을 내어 몇 권 읽어보게 되었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뇌과학 등 시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들이 있어 왔지만 시간만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이쪽 방면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유튜브 콘텐츠로도 많이 활용이 되어 익숙하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특히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단순히 시간은 환상이라는 데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느끼는 시간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이어간다. 엔트로피로 시간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정말 신선해서 책을 읽다가 어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학으로 세상을 설명함에 있어 시간이라는 변수는 설자리가 없다는 개념 또한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모래시계 형태의 시간 구조는 사실 아직도 소화하기는 힘들지만 불교적 사유에 천착했던 나에게는 시간이 환상이라는 개념은 익숙했다. 물론 그걸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그저 인식의 문제로 치부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공간상의 스핀네트워크 개념도 흥미로 왔다. 시공간도 결국은 상호작용이고 관계라는 이 과학적 사유는 우리의 삶을 설명하고 인간의 인어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부합하는 철학적 사유이리라 믿는다. 옛 선배들은 여몽환포영이라는 표현을 남겨놓았으나 과학적 매력은 없었다.

시간도 결국 내가 만든 개념일 뿐이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온 듯하다. 내 기억의 흐름, 왜곡, 망각을 돌이켜 보면서 시간이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양자역학의 이중성도 결국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을 거둬들이고 보면 시간 속에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시간을 만들어 낸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물음은 그래서 나에겐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이 아닌가 한다. 로벨리도 시간의 흐름은 엔트로피에서 오는 인식이고 환상이라고 받아들였다.

시간을 흘러가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현재에서 느끼는 인식의 바탕에서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보는 것이 시간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시간의 식빵에서 잘라내는 하나의 슬라이스는 그저 우리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일 뿐 나란 존재가 시간 속에서 설명될 수밖에 없는 인식의 구조 안에 갇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란 존재는 그저 수많은 사건들의 집합체일 뿐 아무런 자취도 없는 공속에 있음으로 받아들인다.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나란 존재의 불명확함이 같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건 시간과 공간을 따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인듯하다. 시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문제들은 다시 공간으로 떠넘겨질 수밖에 없는 3차원구조의 인식체계가 갖는 한계 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 속에서도 공간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어디까지 규정지을 수 있을지는 언제나 힘든 작업이다. 무아를 아무리 외쳐도 현실태에서 나란 존재는 남아 있기에.

성동준 청주시 용암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성동준 청주시 용암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언젠가 나란 사건은 사라질 것이고 거기에 어떤 흐름 속에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사건의 중첩들이 시간으로 설명될 수 밖에는 없겠지만 어차피 세상은 내 현존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런저런 수많은 설명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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