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전한 대한민국은 없었다. 코로나19의 고통에서 이제 좀 벗어났다 싶은 시점에 대한민국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사망자만 1일 현재 156명에 달하고 부상자도 151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와 축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반성조차 찾기 힘든 모습이다. 그나마 윤희근 경찰청장의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판단했다"고 인정하며 고강도 내부 감찰과 신속수사 약속이 나와 이목을 끈다.

MZ세대에게 '제2의 크리스마스'로 인식된 핼러윈축제에 충북 지역민 2명도 사상자로 명단에 올랐다. 20대 사망자 1명, 경상자 1명으로 일부 지역 대학생들은 축제에 참석하려다 발길을 돌렸다는 아찔한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현재 온라인상에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는 영상과 조롱글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2차 가해로 이뤄지고 있다. "거기에 왜 가서 그런 일을 당하냐"라는 발언은 "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느냐"와 "왜 세월호를 탔냐", "왜 위험한 장소에 갔냐"처럼 피해자에게 오롯이 책임을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데자뷔되고 있다. 관음증에 기댄 삐뚤어진 욕망의 발현뿐만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 구조상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확증편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모자이크 되지 않은 영상은 참사 희생자들의 명예훼손으로 그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소지해 키워드만 검색하면 접근 가능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조회수에 눈이 멀어 참사 소식을 확대 재생산하는 유튜버들의 행태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압사사고의 위험은 우리의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축제와 행사장, 공연장 등 코로나19 이후에 연이어 개최된 내용들을 보면 군중들이 모이고 관람객이 붐비는 순간은 흔하게 발생되고 있다. '참사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29일과 30일 사고 당시 골든타임을 놓칠까 희생자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한 이들은 정부와 행정기관, 지자체 소속이 아닌 수십 명의 일반 시민들이었다.

대한민국은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혐오의 시대를 건너고 있었다. 세대별, 지역별, 젠더 갈등뿐만 아니라 다문화 혐오까지 분노와 비난이 일상화되고 있는 시점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다. 104명이라는 가장 많은 희생자 수를 기록한 20대는 지난 2014년 10대 학창시절 '세월호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오는 5일까지 이어지는 국가 애도 기간에는 대한민국 전체가 충분한 위로와 공감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