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병숙 단양군 문화체육과장

이제 며칠 후면 카타르 월드컵 경기가 열린다. 4년 만에 맛보는 FIFA 월드컵 축구다. 필자는 여성이지만 열렬한 축구팬이다. 10회 연속 출전하는 우리나라 선수단이 현지에 도착했다니 벌써 내 마음도 긴장된다. 이달 초 부상으로 골절 수술을 받은 손흥민 선수가 혹시 출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크다. 그러나 캡틴 SON은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라도 뛰겠다고 하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몸 상태가 걱정도 된다.

스포츠는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 선수들의 숨 막히는 경쟁이지만 승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감동 사연이 있다.

지난달 단양공설운동장에서 생활체육 축구대회가 열렸다. 모두 8개 클럽이 출전했다.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팀이 있었다. '가평FC'란다. 의아했다. 단양군 매포읍 가평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5명에 불과하고 가평리 마을도 자그마한 시골 동네라 주민들이 FC를 만들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궁금증을 가지고 선수들을 살펴봤다. 모두 50대 정도로 보인다. 머리가 백발인 분도 있다. 알고 보니 40여 년 전 이 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는데 당시 감독님을 중심으로 사제지간이 뭉쳐 처녀 출전한 것이란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당시 어린 선수들이 옛정이 그리워 강릉에 사시는 노병렬 감독님과 전화로 팀을 급조했다고 한다. 전날 40년 만의 만찬이 있었다니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 감독님은 74세의 백발임에도 제자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오른쪽 공격수로 출전하신 것이다. 첫 게임에서 우리 단양군청FC와 맞붙었다. 노 감독님이 공을 잡으면 모두가 성원했다. 필자도 어시스트라도 바라는 마음에서 열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노 감독님은 육체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드리볼을 안 하고 주로 빠르게 패스만 하셨다. 군청 선수들도 감독님이 공을 잡으면 몸싸움을 안 하고 멀찌감치 서서 방어했다.

30대가 주축인 군청팀 선수들은 노 감독님에게는 아들보다도 어린 선수들이다. 게다가 가평FC는 거의 50대이고 발을 맞춰볼 기회도 없었으니 게임은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3:0으로 뒤진 채 전반전을 마쳤다.

그러나 스포츠의 아름다움은 살아있었다. 단양군청 선수들은 하프타임에 작전을 짰다. 단양 축구의 영웅으로 다가온 감독님께 골을 선사하기로 하고 후보군을 투입했다. 하지만 경기장 안에선 그게 쉽지 않았다. 감독님은 자신의 위치를 지킬 뿐 골문을 향해 전진하지 않으셨다. 득점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를 즐기는 신선 같은 모습이었다. 제자들도 서로 합을 맞추는 것에 집중했다. 40년 만에 모여 선생님과 함께 뛰는 그 자체가 행복한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감독님 골 헌정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축구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더니, 각본이 있으면 안 되는가 보다.

풀타임을 소화한 백발의 노장은 캡틴의 책임감을 보여주셨다. 상대 팀 선수들은 할아버지뻘에 가까운 대선배님이 행여 다치실까 봐 태클은커녕 길을 비켜주다시피 했다. 백발 노장도 미안해서 바로 패스하고 마는 이 아름다운 경기를 마주하면서 내내 훈훈하고 뿌듯했다.

안병숙 단양군 문화체육과장
안병숙 단양군 문화체육과장

모두가 이기고 지는 것이 무의미함을 이미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생활체육의 진수였다. 지역화합과 감동의 스토리를 연출한 게임이었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자는 김문근 군수님의 격려말씀이 정확히 이뤄진 것 같다. 생활체육이 바로 이런 것임을 실감한 하루였다. 그날따라 가을 하늘이 유난히 드높아 보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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