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저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라고 하면서, 故 김자옥의 아바타가 남편 오승근에게 말한다. 동작은 어색하지만, AI 기술로 목소리를 복원했다더니 귀를 의심할 정도로 똑같다. 마치 그녀가 환생이라도 한 듯.

만년 소녀 같은 해맑은 미소를 좋아했다. 8년 전에 하늘의 별이 된 그녀를 TV '아바드림'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단다. '아바드림'은 시공간을 초월한 가상 세계에서 버추얼(Virtual) 아바타가 등장해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메타버스 음악 쇼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TV 앞에 앉았다. 김자옥의 남편이자 가수 오승근이 '트리뷰트(tribute)'의 드리머로 등장했다. 그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만나고 싶었다"며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시계가 째깍째깍 울리며 기차가 들어오더니 김자옥 아바타가 꽃을 흔들며 등장했다. 출연진도 긴장했지만, 나도 숨을 죽였다.

남편 오승근을 바라보면서 "8년 만이라며,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나 시간이 흘러갔어요. 좋은 추억 만들자"며 미소 짓는다. 함께 출연한 태진아에게도 "대장님 오래만 이예요." 하며, 인사말을 건네는데 평소 상냥하고 예쁜 말씨 그대로이다. 대중을 울고 웃게 했던 김자옥의 일대기가 펼쳐지고, 이어서 '공주는 외로워' 노래를 부른다.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여 가슴 졸이며 보았다. 그 곡을 만들었다는 태진아는 지금도 음원 수익이 많이 들어온다며 애잔하게 바라본다.

연예계의 잉꼬부부였다는 김자옥 오승근 부부, 하늘의 천사들이 질투했나. 아들 결혼식을 넉 달 앞두고 영면했다는 오승근의 이야기에 콧등이 시큰거렸다. 이어서 생사를 초월한 부부의 듀엣곡으로 '빗속을 둘이서'를 부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감성 가득 담은 이 노래를 좋아했다. 오승근과 임영웅의 감동적인 여름 특별 듀엣 무대를 보며 한여름 더위도 잊었다. 그런데 오늘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애절하다.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리던 곡이 이별의 그리움으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옆지기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인다.

"이제 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하면서 손을 흔들며 사라질 때는 안타까움에 쫓아가서 붙잡고 싶었다. 나도 이럴진대 그녀의 남편은 어떻겠는가. 아바타였지만, 아내가 앉았든 벤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아내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여보'란 말, 나도 언젠가는 당신의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갈 테니 그곳에서 밤새도록 이야기합시다. 예전과 달리 길눈이 밝지 않아 혹시 내가 길을 잃을지 모르니 당신이 마중 나와 주구려. 다시 만난다면 아프지 말고 잘살자. 손주도 보아 잘 크고 있다며, 여보, 사랑해!" 하며,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전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사별 후 아내를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꽃이 필 땐 정말 몰랐었네/ 꽃이 지고서야 알았네/ 어여쁘고 소중해서/ 아름다운 꽃이란 걸/ 당신이란 이름의 꽃/ 아주 멀리서 바람이 불어/ 가슴이 시리다.' '당신 꽃'을 부를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면서도 가까운 사이가 부부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며 화기애애한 여생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아옹다옹할 때가 많다.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부부지간에도 같이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한쪽이 되면 그 소중하고 귀함을 절실히 느낀다. 남편이 10년을 누워 있었는데도 그가 없으니 말할 상대가 없다는 지인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나이 들면 부부는 사랑보다는 정으로 산다. 서로 죽고 못 사는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끈끈한 정이 서로를 묶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가 아무리 정이 좋아도 한날한시에 갈 수는 없다. 누군가는 먼저 가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서로에게 꽃이 되어야지 싶다. 너무도 소중한 당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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