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미대 출신 고승현 사장, 이태리식 공예작업 매력 느껴
소신있는 예술관·장인정신 철학… 코로나 타격에도 꿋꿋이 버텨

편집자

멋스러운 취미생활을 즐기며, 나만의 물건까지 손수 만들고 싶다면 가죽공예만 한 활동이 없다. 유독 마니아층이 많은 가죽공예는 한번 접하면 그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동물의 표피를 사용한 예술로서 살아 숨 쉬는 원단을 이해하는 과정부터 생동감이 넘치며 흥미롭다. 가죽은 습도, 온도, 빛, 환경에 민감한데 그 원리를 이용해 공예의 멋을 더욱 극대화하는 것이 장점이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사장님이 장인 정신으로 가죽에 대한 이해, 패턴 디자인, 공예까지 수강생 눈높이 맞춰 차근차근 알려주는 이태리식 공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장인정신 고수하는 조치원 이태리 가죽공방 '브레비 마누'

[중부매일 표윤지 기자] 조치원읍 충현로 94-6 3층에 있는 공방은 여지껏 가본 가죽공방 중 규모가 제일 컸다. 한때 열풍을 일으키던 가죽공예는 전문성과 지구력을 요하는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마니아층의 취미가 돼버렸다. 수도권은 그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아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세종시 신도심 내 전화를 건 공방들은 대부분 폐업 및 휴업 상태였다. 그중 코로나19 타격을 꿋꿋이 이겨내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공방을 운영 중인 조치원 '브레비 마누'에 발길을 향해 보았다. '브레비마누'는 이태리어로 '손에서 손으로'라는 뜻이다. '손에서 손으로'는 고승현(40) 사장님이 서울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할 때 지었던 이름이라고 한다. '브레비 마누'는 지난 2017년 조치원에 문을 열면서 탄생하게 됐다. 가죽공예는 크게 일본식과 이태리식으로 나뉘는데 더 섬세하고 트렌디한 작업을 요하는 이태리식 공예에 매력을 느껴 지금의 공방을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바느질 전 본딩하는 과정으로, 본딩은 '역ㄱ자' 형식으로 발라줘야 뭉치지 않는다. / 표윤지
바느질 전 본딩하는 과정으로, 본딩은 '역ㄱ자' 형식으로 발라줘야 뭉치지 않는다. / 표윤지


직접 해본 원데이클래스, 가죽공예 원리 배우며 내가 만든 제품까지

수업은 크게 원데이클래스, 단품반, 취미반, 정규반으로 나뉜다. 자신이 원하는 교육과정이나 만들고 싶은 제품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1인공방 특성상 수강생 한 명 한 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원데이클래스는 현재 일요일에만 진행된다. 기자는 이날 원데이클래스를 수강해 '가죽 필통'을 직접 만들어보았다. 클래스 신청 시 반드시 사전예약을 해야 하며, 이때 원하는 작품과 가죽 종류를 사장님께 알려야 한다. 패턴 디자인과 가죽 재단 작업이 공예 과정 중 제일 까다롭기 때문에 원데이클래스에선 예약 시 알려준 재단 가죽이 미리 준비돼 있다. 초보자들이 가죽공예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술적.시간적 측면을 고려한 사장님의 배려다.
 

예약 시 사전에 신청하면 이니셜도 새길 수 있어 나만의 온전한 작업물을 만들 수 있다. / 표윤지
예약 시 사전에 신청하면 이니셜도 새길 수 있어 나만의 온전한 작업물을 만들 수 있다. / 표윤지


작품을 만들기 전, 샘플링한 가죽원단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가죽필통 만들기는 '본딩-구멍뚫기-바느질' 순으로 진행된다. '피할'은 가죽공예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써, 말 그대로 가죽을 깎아 질을 향상시키는 작업이다. 피할이 잘 된 가죽 재단이 작업물의 기본이 됨으로 처음부터 잘못된 기술로 다듬어질 시, 결과물은 엉망이 된다고 한다. 피할은 고도로 숙련된 작업이라 이를 시행하는 피할집이 현재 서울에 3~4개, 부산에 1개가 있을 정도로 희소하다고 한다. 바느질을 하기 전 피할된 가죽에 양면 본드 작업을 하는데, 이는 가죽을 고정해 바느질할 때 밀림현상을 최소화한다. 본딩된 부분에 잘 연마된 칼인 '크리저'로 바느질이 들어갈 자리에 선을 그어 준다. 바느질을 보다 획일적이고 정교하게 함으로써 제품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작업이다. 가죽은 보통 단단하고 두껍기 때문에 '치즐'로 바느질이 들어갈 자리에 구멍을 먼저 내준다. 일본어로는 목타, 이태리어로는 그리프라고 한다.
 

'새들스티치' 기법으로 바느질하는 과정이다. 양손 바느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로 만들어진 포니에 가죽을 고정한 후 작업을 진행한다. / 표윤지
'새들스티치' 기법으로 바느질하는 과정이다. 양손 바느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로 만들어진 포니에 가죽을 고정한 후 작업을 진행한다. / 표윤지

이후 가죽공예의 꽃이라 불리는 바느질이 한 땀 한 땀 수놓아진다. 손바느질과 기계식 바느질의 차이는 연쇄성이다. 기계식 바느질은 미싱으로 작업돼 올 하나가 풀리면 연쇄적으로 풀리는 반면, 손바느질은 서로 맞물려 있지만 각자가 독립성을 유지해 풀리지 않는 튼튼함을 무기로 삼는다. 브레비 마누는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명품브랜드 에르메스 방식의 '새들스티치'를 고수한다. 새들스티치는 실 양쪽 끝에 바늘을 꿰어 두 개의 바늘을 이용해, 겹쳐진 두 장의 가죽을 손으로 꿰는 박음질 기법이다. 하나의 실이 끊어지더라도 다른 하나의 실이 남아 있는 튼튼한 기법이다. 현재 가방으로 유명한 에르메스는 초기엔 말안장 등을 만드는 마구 용품점이었다. 말안장이 허술할 시 낙마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견고한 내구성이 중시됐다.
 

본딩을 해 테를 잡아준 가죽에 바느질 전 치즐이란 도구로 구멍을 내는 작업이다. 가죽이 두껍기 때문에 치즐을 사용할 시 망치를 이용한다. / 표윤지
본딩을 해 테를 잡아준 가죽에 바느질 전 치즐이란 도구로 구멍을 내는 작업이다. 가죽이 두껍기 때문에 치즐을 사용할 시 망치를 이용한다. / 표윤지

공방에서 사용하는 린넨실 또한 에르메스 방식을 따왔다. 린넨실은 기계식 나일론실과는 달리 자연실이다. 두꺼우나 잘 끊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어 바느질 전 벌꿀로 만들어진 '비즈왁스'로 코팅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 잘 코팅된 린넨실은 힘이 생겨 일자 형태의 꼿꼿한 모습으로 변한다. 이후 양손 바느질인 새들스티치를 해줘야 하는데, 양손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가죽을 잡아주는 '포니'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포니(pony)는 어원대로 당초 말 모양에서 비롯돼 지어진 이름이지만, 현대식에선 실용성을 위해 하부에 달린 발이 대부분 사라졌다.

엣지코트를 하기 위한 흰색 프라이머와 색상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페니체 염색약. / 표윤지
엣지코트를 하기 위한 흰색 프라이머와 색상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페니체 염색약. / 표윤지

바느질이 끝나면 마무리 단계로 가죽 가장자리에 막을 입히는 '엣지코트' 작업을 한다. '페니체'라는 염색약 중 원하는 색상을 골라 스펀치에 소량을 묻혀 꼼꼼히 찍어주면 코팅 작업이 완성된다. 한층 더 튼튼한 엣지코트를 하기 위해선 염색약과 프라이머를 겹겹이 발라주면 작업물은 더욱 견고해진다.

주황 빛깔 자태를 뽐내며 완성된 가죽필통은 끝단이 말려 있었다. 이는 가죽이 변형되는 성질인 '가소성' 때문이다. 가소성은 사람들이 가죽을 애정하는 가장 큰 요소다. 이 가소성을 이용해 물을 먹여 형태를 변하게 하는 물성형, 열을 가해 변하게 하는 열성형으로 원하는 모양의 가죽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

완성된 가죽 필통의 영롱한 자태.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끝단이 말려있지만 가죽의 가소성 특징상 사용하는 사람에 맞게 변형되는 묘미가 있다. / 표윤지
완성된 가죽 필통의 영롱한 자태.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끝단이 말려있지만 가죽의 가소성 특징상 사용하는 사람에 맞게 변형되는 묘미가 있다. / 표윤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고승현(40)사장은 "80세까지 장인정신을 가지고 가죽공예 일을 하고 싶다"며 "수강생들이 하고 싶은 디자인을 가져올 때, 나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만들어드릴 수 없을까봐 염려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며 가죽공예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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