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의 마음을 읽어야 좋은 물건 탄생… 그게 무쇠예술"

편집자

"쇠는 정말 강하잖아요. 그런 쇠의 마음을 읽어야 좋은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무쇠예술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증평장뜰시장 뒷골목에서 옛날 시골장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증평대장간'(증평군 증평읍 중앙로 8길 17-1)을 운영하고 있는 최용진(74) 장인. 50여년 외길을 걸어온 그는 1995년 전국 최초의 대장간 부문 숙련기술전수자로 지정됐을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집안이 어려워 생계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전통의 맥을 잇는 민속예술이 되어 보람의 꽃을 피우고 있다. 대장간 일을 '창조적인 무쇠예술'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최초로 대장간 부문 숙련 기술자로 선정된 '증평대장간' 최용진 장인 /송창희
국내 최초로 대장간 부문 숙련 기술자로 선정된 '증평대장간' 최용진 장인 /송창희

 

찰흙보다 쉽게 다루는 '쇠의 달인'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괴산 청천에서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입학 즈음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업실패로 갑자기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는 대부분이 농사일로 먹고 살다보니 청천면에만 3개의 대장간이 있었고, 면단위에는 보통 2~3개의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 일을 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대장간 일을 시작했고, 23살 때 충주에 살던 누님이 불러 매형이 운영하던 대장간에서 본격적인 기술을 익혔다. 매형이 대장간을 비울 때면 매형을 대신해 호미, 낫 등의 농기구와 각종 생활도구를 만드는 일이 많았고. 그가 만든 도구들이 인기리에 판매되면서 대장간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게 됐다.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듯한 '증평대장간'의 각종 도구들 /송창희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듯한 '증평대장간'의 각종 도구들 /송창희

이후 최 장인은 증평 37사단에서 잠깐 일을 하게 된 인연으로 1974년 증평에 대장간을 열고 정착하게 됐다. 무쇠를 찰흙보다 쉽게 다루는 '쇠의 달인'인 그의 기술이 입소문이 나면서 KBS 인간극장은 물론 유명 방송 프로그램과 신문에 보도 되는 등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또 역사스페셜 등 옛 무기류에 대한 제작 요청이 들어오면서 '칠지도'를 재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국 방문객 위한 관광상품 개발

그의 대장간에 들어서면 빼곡히 걸려있는 수많은 연장들이 눈에 띈다. 각양각색의 호미와 가위, 칼, 낫, 곡괭이, 문고리, 목공도구, 말발굽 편자, 연탄 집게까지 작은 민속박물관에 온 듯하다. 그가 만드는 제품은 200여 가지에 달하며, 아직도 전국에서 믿고 찾아오는 20~30년 단골들이 있어 산업화 속에 사라져 가는 장인의 전통 대장간이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기념상품 /송창희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기념상품 /송창희

한참 일할 때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대장간에 나와 밤 12시까지 손이 퉁퉁 붓도록 일했지만 지금은 나이도 있고 해서 맞춤 주문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일찌기 컴퓨터를 익혀 SNS로 소통하고 전국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받는다.
 

증평장뜰시장 '증평대장간' 최용진 장인


최 장인은 최근들어 농기계인 베일러 커터날 수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부분 쓰다가 무뎌지면 버리는 1회용 커터날을 불가마에 넣어 달군 후 물에 살짝 담그는 냉각 열처리 과정을 거쳐 정밀하게 칼날을 갈아주면 신제품보다 더 잘 들고 오래 쓸 수 있는 칼날로 변신을 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오랜 대장장이만의 노하우가 꽃피는 시간이다.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듯한 '증평대장간'의 각종 도구들 /송창희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듯한 '증평대장간'의 각종 도구들 /송창희

청바지를 작업복으로 입고 작업에 임하는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시간은 전국에서 구경 오는 관광객들을 만날 때다. 익순한 손놀림으로 호미와 낫, 가위를 1분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마술같은 그의 손길에 누구나 깊은 탄성을 쏟아낸다. 전국에서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관광상품도 개발했다. 이 상품에는 장식용 도끼, 낫, 호미, 가위, 문고리 등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 도구들이 앙증맞게 들어있다.

 

망치질과 담금질 전통방식 고수

옛날 시골장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증평대장간' 모습
옛날 시골장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증평대장간' 모습

그는 붉게 달궈진 쇠를 끊임없이 두드리면서 용도에 맞는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 이 때는 쇠가 가진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성질을 잘못 파악하면 쇠가 부러져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또 날 부분을 살짝 물에 담구는 고도의 기술도 필요하다. 그는 이제 불과 쇠의 색깔만 봐도 온도를 알 수 있다. 좋은 쇠일수록 온도를 더 잘 맞춰주고 혼을 불어넣어줘야 한다고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망치질의 각도와 힘이다. 쓸데없이 힘을 쓰면 안되고 쇠의 성질에 맞게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 그는 하루 만번 이상의 망치질을 하며 손끝 애정이 담긴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탄생한 물건들은 그에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듯한 '증평대장간'의 각종 도구들 /송창희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듯한 '증평대장간'의 각종 도구들 /송창희

최 장인은 "30년된 가마 앞에 서면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요즘은 내가 마지막까지 대장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며 "평생 창조적인 무쇠예술로 생각하며 연구하고 노력해 온 이 일을 나이와 상관없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하는 것이 앞으로의 희망사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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