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은경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눈이 내린 후 영하의 날씨를 기록했던 지난 12월 14일 김정원 피아니스트가 온다는 소식에 청주아트홀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김정원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감미로운 연주로 첫 곡으로 들려준 '모차르트 환상곡 3번 d단조 K.397'곡에 얼어붙은 손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뒤이어 연주한 '리스트의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S.173, 7번 장송'과 '모든 영혼을 기리는 날의 기도, S.562'로 이어지는 무대를 보면서 왜 김정원을 '건반 위의 음유시인'이라고 부르는지 리사이틀 주제를 '건반으로 쓰는 시'라고 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음한음 온 정성을 다해 연주하는 김정원의 깊은 피아노 터치와 울림은 마치 한편의 무거운 장송시와 신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문을 듣는 듯 했다.

'쇼팽 환상곡 f단조, Op.49'의 경우도 쇼팽의 쇼팽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과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함을 피아노와 포르테의 극단적인 비유로 표현해줬다.

이 곡을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쇼팽의 갈등과 번뇌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이 곡 중간에 피아노 현이 몇 번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조율문제였는지 피아노 악기 자체 문제였는지, 피아니스트의 미스터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조용한 곡 위주의 곡들로만 채워져서 그런지 조금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의 1부를 마치고 15분간의 인터미션 후 기대되는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를 감상할 수 있는 2부의 막이 올랐다.

'경쾌하고 발랄한 쇼팽의 뱃노래 F샵장조, Op.60'을 시작으로 쇼팽의 두 개의 야상곡, Op.9를 들을 수 있었다. 쇼팽 특유의 그 애절하고도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미세하고 섬세한 감정의 선율들이 너무나 잘 표현됐다. 다만 워낙 유명하고 어린 피아니스트 사이에서도 대중적으로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보니 조금 식상한 느낌은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곡 대신에 앵콜곡으로 준비한 쇼팽의 녹턴 20번이나 슈만, 리스트의 '헌정'을 들려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앵콜곡 두 곡을 연주할 때 김정원 자신의 영혼을 다 갈아 넣었다는 느낌이 들만큼 강렬한 인상과 큰 감동과 여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곡인 '환상 폴로네즈 A플랫장조, Op.61'을 듣고 있자니 쇼팽을 이렇게 잘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해내는 김정원씨가 마치 쇼팽이 환생해서 내 눈앞에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큰 감명을 받아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폴로네즈 특유의 단조 느낌의 쓸쓸하고 슬프면서도 행진곡처럼 강렬하고 웅장했다가 춤곡 특유의 화려하고 흥겨운 감정까지 한 곡에 여러 요소들을 다 표현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간 까다롭고 어려운 게 아닌데 그 어려운 곡 연주를 완벽하게 해내는 김정원씨를 보니 역시나 한국 최초 쇼팽 국제 콩쿨 대회 출신이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김정원 피아니스트같은 대가의 연주를 청주예술의전당 대강당에서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았다. 뿐만 아니라 청주 아트홀의 피아노 관리와 음향 장비들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은경
김은경

이와는 별개로 청주 관객들의 관객매너 역시 함께 업그레이드 되어지길 바래본다. 음악회 중간중간 잦은 기침소리에다가 휴대폰 떨어뜨리는 소리, 패딩 부스럭거리는 소리 등 전체적으로 어수선해서 연주에 방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주시민들을 위해 추운 겨울 늦은 밤까지 2곡의 앵콜곡까지 최선을 다해 들려준 김정원 피아니스트와 그런 무대를 청주에서 볼 수 있도록 마련해준 중부매일신문에 깊은 감동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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