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권오중 시인·가수
동장군이 찾아와 12월을 꽁꽁 얼렸다. 이렇게 매섭게 추운 날에는 걱정이 앞선다. 산에 사는 짐승과 집 없는 사람은 어떻게 이 추위를 견딜까. 따뜻한 집에서 지내는 것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히 서있는 나목을 잠시 바라본다. 차가운/바람이 분다//꼬옥 잡았던/손을 놓는다//
우수수/잎이 떨어진다//살가운 정情도/함께 떨어진다//
이별의 슬픈 눈망울이/희망의 꽃망울 속에 고이 잠든다(나목 권오중)
12월이 되니, 한해가 기우뚱 기울어진다.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안쓰럽다. 마치 촛불이 작아지듯 점점 사위어간다. 그렇게 한해가 소리 없이 스러져간다. 지나온 나날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수북이 쌓였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참 야속하다. 자꾸 흰머리는 늘어가고 주름살도 늘어만 간다. 그러나 세월은 늙지 않는다. 또 눈치도 없다. 그래서 세월은 잔밉다. 세월은 돌고 돌아 봄이 찾아오지만 우리네 봄은 결코 오지 않는다. 판소리 사철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낙목한천 찬바람에/백설만 펄펄 휘날리어/은세계 되고 보면/월백 설백 천지백 하니/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이 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다시 청춘은 어려워라/어와 세상 벗님네들/이 내 한 말 들어보소/인간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고 해도/병든 날과 잠든 날/걱정 근심 다 제하면/단 사십도 못살 인생/아차 한번 죽어지면은/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바람에 은백색 머리칼을 날리는 억새의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예로부터 세월에 관한 글과 노래가 많다. 또한 시간에 관한 경구도 많다. 오죽했으면 나훈아가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라며 하소연할까. 필자도 자작곡 '감사가 정답이다'에서 세월을 노래했다.
세월아 세월아/너는 어이 늙지도 않느냐/나는 벌써 흰머리가/자꾸만 늘어가는데/산삼을 먹었냐/불로초를 먹었느냐/비결을 알려다오/뭐야 뭐야~~~/비결은 없단다/마음 먹기 달렸다/오늘도 감사/내일도 감사/감사가 정답이다
어릴 때는 극장을 마음대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릴 때는 세월이 빨리 가지 않아 야속했다. 어서 어른이 되어, 내가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마음껏 보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세월이 너무 빨리 가 참 야속하다.
어릴 때는/운동장이 커 보였고/저수지도 커 보였다/세월도 커 보여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운동장이 작아 보이고/저수지도 작아 보인다/
세월도 작아 보여/세월이 너무 빨리 간다(세월 권오중)
금년 겨울에는 벌써 여러 번 눈이 내려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다. 눈은 겨울의 서정시다. 특히 첫눈은 뭇사람을 설레게 한다. 12월이 깊어가니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꿈에 부푼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12월 송가를 나직이 읊조려본다. 달랑 남은 잎새 하나/찬바람에/오돌오돌 떨고 있습니다//
열사의 땅을 지나/빨간 고추잠자리 무등 타고/이제 종착역에 왔습니다//구불구불 험난한 길/아롱다롱 꽃을 피우며/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찻잔을 바라보며/곰곰이 한해를 되돌아봅니다//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추억의 무덤에 묻으면/그곳에서 꽃이 피어납니다//그대여 눈물은 보이지 마세요/흰 눈이 겨울의 등을 덮어주고/언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니까요//열심히 살아온 당신/가슴이 따듯한 사람들/시린 세상에 반짝이는 별입니다(12월 송가 권오중)
월드컵축구의 열기가 12월 한파를 녹였다. 우리나라가 기적같이 16강에 진입하자 전국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며 월드컵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동안 축구 화제로 마냥 즐거웠다. 이제 한 해의 끝을 '미스터트롯 2'의 열기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며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