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지난 12월3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연일 화제다. 공개된 지 이틀만에 글로벌 순위 탑 5에 안착하는 것은 물론, 한국, 홍콩, 대만, 태국 등 8개국에서 1위에 올라섰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성인이 되고나서 가해자 5인방을 응징하는 복수극이다. 생생한 캐릭터의 향연과 배우들의 호연도 흥미롭지만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건 인간의 이중성과 약점을 낱낱이 전시(展示)한다는 점이다. 밝고 참신한 이미지의 기상캐스터지만 학폭 주동자, 대형교회의 목사 딸이지만 마약중독자, 친절한 스튜어디스의 속물근성, 골프 리조트·명품 편집숍 대표의 색약, 금수저 친구들과 수십년째 몰려다니지만 일개 심부름꾼이자 운전기사로 분류되는 캐릭터의 서사가 그렇다.

19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의 이 드라마에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맨살 고데기 온도체크보다 더 참혹했던 것은 아무도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방관자는 잠재적 가해자임을 암시하는 메시지는 묵직했고 뼈아팠다.

드라마를 온전히 채워가는 대구법(對句法)식 대사도 인상깊다.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 '빽이 좋네?' 그래 죽으면 꼭 천국가. 사는 동안은 지옥일테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전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K-드라마 촬영지로 '청주'가 활용되고 있는 점이다. 청주시민이라면 중앙공원의 압각수나 청주 용화사의 석조불상군, 청주교육대학교가 낯설지 않은 장소다. 이는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드라마가 방영되자 마자 지역 맘카페에서는 '오늘 회차에 나온 장면이 충북도청에서 촬영된 것 아니냐'는 관람평이 줄을 이었다.

이런 드라마의 성공 뒤에는 청주영상위원회의 적극적인 인센티브와 로케이션 지원책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인센티브 지원사업의 경우 3일이상 촬영하는 작품에 최대 1천500만원, 10일이상 촬영하는 작품에 최대 7천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인센티브 지원사업의 경우 2021년에는 총 12편에 2억 5천만원, 지난해에는 8편에 2억8천여 만원이 지원됐다.

지난 2021년 로케이션 지원만 44편, 2022년 51편에 달한다. 로케이션 지원은 배우와 스태프 포함 최소 70~80명씩 움직이는 촬영팀 특성상 51편의 경우 4천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청주에 체류하며 소비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현재 청주영상위원회에서 로케이션 지원작을 살펴보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리들의 블루스', '괴이', '카지노' 등 화제작은 물론, 영화 '젠틀맨', '헤어질 결심', '카터', '데시벨' 등 개봉작 등 다수 포진해 있다.

더욱이 청주는 수도권에 인접해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도농복합도시로서의 매력이 다양한 화면을 담아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과 두달여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하는 드라마 작가들과 영화감독·제작사 대표·제작PD 등이 잇따라 방문한 사례는 그런 의미로 유의미하다.

다만 빛이 환하면 그림자도 짙듯이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재인', '카인과 아벨' 등 10여년 전 인기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된 청주시 수암골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기존 주민들의 사생활 침해부터 쓰레기, 소음 문제, 카페거리와 대규모 건축물 난립으로 퇴색된 수암골의 현재는 청주시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현재진행형 숙제다.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배우 오드리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출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의 스페인 계단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다. 디즈니+와 애플TV+까지 진출하면서 한국드라마는 전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판에 올라섰다. K-드라마의 열풍에 촬영지는 곧 관광지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히트작에 잇따라 언급되고 있는 '청주'가 단단히 준비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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