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병갑 정치부장

해마다 명절 때면 정치인들은 더욱 분주하다. 지역민들을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민심을 청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후 지난 3년간 지역에서 정치인들 만날 기회는 확연히 줄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 및 인원을 제한하고 대면 접촉을 피했던 탓이리라. 혹여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칫 코로나19에 확진이라도 되면 '전파자'로 낙인찍히고 눈총을 맞기 십상이기도 했다.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역에서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중앙 정치권에서 여야가 치열한 정쟁이 벌어지면서 지역구 의원들이 항시 출동할 수 있는 '5분 대기'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소위 국회에서 힘없는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중앙당의 지침은 피할 수 없는 '명령'이다.

올 설 명절은 조금은 다른 분위기다. 코로나19 방역체계가 완화돼 비교적 자유롭게 지역을 누빌 수 있다. 이로 인해 정치인들의 민심 탐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거리 곳곳에는 현수막이 등장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 신인들의 발길은 더욱 부산하다. 올해 선거가 없지만, 내년 4월 총선이 불과 1년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 정가도 조직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총선 체계에 속속 돌입하고 있다. 여야 모두 사활을 건 선거전이 예상된다. 여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야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야당은 과반수 의석을 유지해야 여당을 견제하며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당의 명운이 걸려 있는 만큼 여야 모두 놓칠 수 없는 선거다.

오랜만에 지역 민심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됐다. 물론 그동안도 여러 경로를 통해 민심 파악에 나섰겠지만, 정치인들이 직접 나서 들을 기회가 오랜만이다. 벌써 들리는 말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많다. 정치에 대한 민심이 냉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가 어디 이번 설 명절뿐이었던가. 명절 민심을 청취한 정치인들이 되뇌는 말이다. 해마다 반복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정치에 대한 불신과 국민의 무관심이 지속돼 왔지만 이를 준엄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왔다는 방증인 셈이다.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기까지 한다. 국민 비난의 화살을 상대 정당에 돌리며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자신들은 옳은 일을 하고 있지만, 상대 정당이 발목잡기를 한다며 아전인수격 해석하기가 일쑤다.

장병갑 정치부장
장병갑 정치부장

22대 총선이 이제 1년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은 선거가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인터뷰에서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이번 총선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설 명절 지역을 찾아와서도 중앙정치 사정을 호소하며 중앙정치로 지역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여당은 과반의석을 확보해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야당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야당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며 민심에 호소하고 있다. 여야가 모두 강조하는 것은 총선에서의 '심판론'이다. 지역은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중앙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상대를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민이 쓴소리를 했지만, 자신들이 필요한 말만 들을 뿐이다.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경제침체 등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한데 정치권은 자기반성을 모른다. 여전히 자신들의 입신양명(立身揚名)만 도모한다. 국민이 정치와 멀어지고 불신이 커지는 이유다. 설 민심조차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면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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