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교황청은 사후에 모범적인 신앙인을 복자(福者)로 인정하는 시복(諡福)과 복자를 성인(聖人)으로 인정하는 시성(諡聖)을 심의할 때 회의에서 진심과는 무관하게 반대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이 사람이 바로 "악마의 대변인"으로 후보자의 결점이나 미심쩍은 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제도는 1587년 교황 식스투스 5세가 도입한 이후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공식 폐지될 때까지 약 400년간 사용되었다.

조직에서 최종적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에게 악마의 대변인은 아주 성가신 존재일 수 있다. 자신과 같은 의견이나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과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일사천리로 결정할 수 있다. 악마의 대변인이 한명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을 세세하게 캐내어 반론을 제기한다. 리더는 이런 사람을 권위로 제압해서 입을 막든지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영국의 철학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론의 자유가 의사결정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다수가 범할 수 있는 지적 오류를 수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이 걸린 의사결정 과정에서 성가신 '악마의 대변인'은 때로는 조직의 구세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조직이건 이런 '악마의 대변인'같은 존재가 있다. 교황청처럼 강제로 그런 역할을 맡기지는 않지만 타고 나기를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기존 조직 시스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리더의 의사결정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도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은 여간 성가시고 불편한 일이 아니다.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나 리더의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악마의 대변인'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리더는 '악마의 대변인'을 조직에서 제거해야 할 진짜 '악(惡)'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경우도 있고,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그런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소위 반골 기질이 있는 '또라이'라고 생각하고 왕따 시키기도 한다. 이런 조직에서 '악마의 대변인' 기질을 가진 구성원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직을 떠나거나 입을 닫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 침묵하게 된다. 결국, '악마의 대변인'이 자취를 감추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의사결정을 하거나 리더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조직이 된다.

개인의 지적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의사결정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반면, 의견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조직일수록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들로 증명되었다. 조직의 중대한 의사결정 일수록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통해 수준 높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의 대변인'이 리더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대다수의 구성원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최근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이념주의, 세대 간의 갈등과 계층 간의 양극화가 심각해 졌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반론과 문제제기를 배척하고 이들과 갈등을 겪는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수많은 조직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악마의 대변인'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그들과 마주앉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우리가 간과했던 문제점을 발견하고 오류를 수정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우리는 중대한 의사결정의 질적 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다. 2023년 계묘년에는 모든 조직들이 '악마의 대변인'을 적극 활용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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