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학순 청주시 하천과 국가하천팀장

바둑 마니아는 바둑판 속에 세상이 있고 열아홉 줄에 인생이 있다고 말한다. 7급이 1박 2일 꼬박 잠을 안 자고 고민을 해도 결코 3급 수준의 수가 보이지 않는 게 바둑이며 프로 9단일지라도 18급이 두면 응수를 해야 하는 게 바둑이다.

단순히 바둑을 즐기는 것을 넘어 한 돌 한 돌 놓을 때마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성격을 읽을 수 있고 나 자신의 특성을 재발견하는 등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패턴을 바둑판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상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국가별로 보면 한국인들은 자기 집은 지키려 하지 않고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기를 좋아해서 흑백 모두 큰 집을 짓기 어려운 형국이고, 중국인은 충분히 이기고 있음에도 상대가 불계패 신청할 때까지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하려고만 한다. 일본인은 자기가 이겼다고 판단되면 개가를 요청하며 일찌감치 상대가 항복하길 바라지만 지고 있을 때에는 끝까지 저항하며 꼼수를 부린다. 대만인은 대마가 잡히면 곧바로 포기한다. 태국, 홍콩 등 동남아는 물론 미국, 캐나다, 유럽까지 전 세계에서 많은 바둑 애호가들이 온라인 바둑을 즐기고 있다.

내가 바둑을 배우게 된 계기는 군 복무 시절 내무반 고참 병장이 담배 가치 내기를 하자며 가르쳐준 게 전부다. 처음엔 그냥 놀아주면 되겠거니 했었는데 점차 판이 커지더니 한판에 담배 한 보루까지 걸고 하자는 것이다. 그때부터 줄바둑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지금껏 정석 없이 그냥 심심풀이로 인터넷 바둑을 접해 왔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작하던 요즘 바둑은 내 삶의 일부가 돼버렸다. 매일 서너 판의 대국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바둑 애호가다. 1~2급 수준이지만 가끔 단맛을 보기도 한다.

승고흔연 패역가희(勝固欣然 敗亦可喜)란 말이 있다. 이기는 건 진실로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지는 것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뜻 맞는 좋은 벗을 만나 수담(手談)을 나눈다면 비록 지더라도 즐거운 게 군자의 마음이라는 가르침이다.

바둑에 몰입하게 되면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순간순간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승패를 떠나 그 시간만큼은 내게 소확행이다.

바둑을 두면서 깨달은 것은 끊기와 끈기다. 적당한 시기에 끊어야 하는 것과 마지막 돌을 놓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박학순 청주시 하천과 국가하천팀장
박학순 청주시 하천과 국가하천팀장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 흑과 백돌을 모두 놓을 곳은 361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둑의 수(手)는 지구상의 인간의 수(數)보다 훨씬 많아 항하의 모래 수같이 많다고 하며 혹자는 인생을 바둑과 같다고 한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순간 신의 한 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것이 신의 한 수였는지 자충수인지는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지금 하려는 모든 일 또한 실패를 염려해 섣불리 판단하고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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