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프랑스 절대 왕정 시기에 사법(司法)관계의 관직을 사서 귀족의 신분에 오르게 된 신흥 귀족을 법복 귀족(法服貴族, Noblesse de robe)이라고 부른다. 신흥귀족은 재판관이 많았고 이들이 입은 법복(프랑스어 'robe')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반면, 옛날귀족인 기사계급의 후예들은 대검 귀족(帯剣貴族, Noblesse d'epee)이라고 불리며 총칼(프랑스어 'epee'는 검을 말함)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군인 귀족이다. 재판관의 자리를 돈으로 산 법복 귀족들은 돈과 연줄에 따라 재판을 하면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왕에게 돈을 갖다 바치며 자식들에게 관직을 상속했다. 이들에게 정의는 돈과 권력일 뿐 공정과 상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의 권한남용과 부패는 결국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우리나라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는 법복(法服)을 입고 재판을 한다. 그러나 프랑스 절대 왕정 시기처럼 판사나 검사의 관직을 매관매직하는 시대는 아니다. 사법고시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사람들 중에서 판·검사가 임용되었지만 지금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중에서 판·검사를 임용하고 있다. 사법고시 시절이나 지금 로스쿨 제도에서나 판·검사로 임용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서울권 주요 대학출신의 '엘리트'들이다. 최근 이런 엘리트 법조인들이 내놓는 재판 결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다.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판결들이 그런 의구심을 부추긴다. 그런 판결들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재판장의 이념적 성향을 문제 삼아 판결의 공정성이 의심 받기도 한다.

왜 국민들은 그런 판결들에 대해 '엘리트 법기술자'인 판·검사의 판단에 의구심을 갖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18세기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죄와 형벌'에서 '무지한 자는 감각으로 판단하지만, 전문가는 학설과 의견으로 판단한다. 전자의 판단이 후자의 판단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안내자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근거한 증거판단이 법 전문가들의 법리적 해석보다 오류의 가능성이 더 적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법을 아는 일이 전문 학문이 아니고 누구나 자신과 동등한 이웃 시민들로부터 재판을 받는 법제'를 찬양했다. 난해한 법리적 해석으로 포장되었지만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볼 때면 베카리아의 이 말이 떠오른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나조차도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있다면 '법조 엘리트'가 아니라 내가 겪은 일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을 갖춘 일반 시민들이 나를 재판 해주는 것이 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최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부 판결과 상식적이지 않은 법조인들의 판단들이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윤석렬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법적 소송이 난무하면서 국정운영이 정치(政治)인지 송사(訟事)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과 소위 법조 엘리트 출신의 고위공직자들이 행정부를 장악하면서 삼권분립(三權分立)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의심하게 된다.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양심과 법에 따라 재판하는 판사와 공익의 대표자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검사라는 믿음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더 늦기 전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개점휴업' 중인 국회 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법복 귀족(法服貴族)'으로 촉발 된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처럼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들의 분노가 입법·사법·행정 모두에게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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