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혜미리예채파'.

이 제목의 뜻을 맞춰보시오. 놀랍게도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다. 가수 출신 배우인 '혜'리와 (여자)아이들의 '미'연, 안무가 '리'정, 가수 최'예'나, 르세라핌의 김'채'원, 방송인 '파'트리샤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제목이다. 강원도 산골 집에서 정착생활기를 그린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인데 게임을 통해서 캐시를 획득해 생필품을 구매하며 집을 꾸며간다. 개성있는 멤버간의 시너지도 흥미로웠지만 '생필품 획득'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소위 말해 '요즘애들' 노는 모습이 궁금했다. 맏언니인 혜리는 1994년생이다.

주말 운전하는 차안에서 들었던 노래는 요즘 히트곡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와 1990년대 히트곡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다. 세대별 맞춤선곡이라는데 30년 세월의 간극처럼 가사도 극명히 대비됐다.

'아뿔싸 일어나야지 아침인데 눈 감았다 뜨니 해가 중천인데 아침밥은 Pass 10분 더 자야 돼 Oh Take-out coffee로 (아메 아메 아메 아메) (중략) 우린 다 이어폰 꽂은 Zombie 필요해 모두 다 텐션 Up pumpin' 힘을 좀 내어보자 (중략)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파이팅 해야지 파이팅 해야지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 中)

경쟁사회에 내몰린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가사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힘내야지 어쩌겠냐는 자조섞인 가사가 오래 귓가를 맴돈다.

최근 발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공직사회 세대 가치관 변화와 조직혁신 연구보고서'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부서원과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문항에 기성세대와 MZ세대가 부정적인 답을 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1천21명을 연령대별로 조사한 결과인데 5점을 기준으로 MZ세대는 2.23, 기성세대는 2.70으로 함께 점심식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14만 구독자를 보유한 키즈 관련 유튜브 채널 ODG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세대별로 답하는 영상이 있다. 10대부터 70대까지 순차적으로 답을 하는 장면은 일종의 시간여행이자 시대의 아픔을 안고 성장한 세대의 요약본으로 손색이 없었다. 10대 어린이가 기억하는 2020년 코로나로 시작된 영상은 2015년 메르스, 2014년 세월호, 2002년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40대들이 기억하는 1997년 IMF 외환위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79년 박정희대통령 서거, 1969년 3선 개헌 반대운동, 1950년 6·25전쟁에서 영상은 끝이 난다.

유행가, 유튜브 인기 동영상, 설문조사 등은 동시대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자 시대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수단이다. 사실 세대갈등은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단지 7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초고속성장이란 빛이 남긴 깊은 그늘이다. 그렇기에 세대를 이해하려는 서로의 노력이 그 어느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몇년 전에 여성복 매장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푸념이 떠오른다.

"아르바이트생 이해하려고 책 '90년생이 온다'를 사서 읽고 있다니까. 오전 9시 출근이라 8시50분까지 오랬더니 오후 5시50분에 퇴근하겠다고 하는 요즘 애들? 정말 공부해서라도 알아야겠어. 근데 우리 땐 안그랬는데 말이야."

최근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를 다시 폈다.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다른 사람의 생활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젊음을 시기하지 않을 것, 러시아워의 혼잡한 시간대에는 이동하지 말 것, 새로운 기계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늙음을 자각할 것, 자신의 동네에 애정을 가질 것 '

MZ세대를 이해하는 방법론이자 지혜롭게 나이들어가는 매뉴얼북 하나 갖고 있다는 자위를 해보면서 말이다.

키워드

#데스크칼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