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

최근 아들의 학교폭력 연루로 국가수사본부장이 낙마하면서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된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는 학교폭력의 잔혹성이 부각되면서 화제를 모았고, 담당 연출자가 학교폭력 시비에 휘말리며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의 경우, 허술한 검증절차와 피해자 보호조치 등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어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30여개 국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것은, 학창시절에 경험한 아픈 추억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폭력은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들에게도 깊은 상처로 남는다고 한다. 2022년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초등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총 321만 명 중, 5만여 명의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적지 않은 숫자고, 설문에 응답하지 않은 학생들까지 고려하면 피해 학생은 더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2011년 대구 여중생 자살 사건 등 학생들의 연쇄 자살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이 추진된 지 10년이 됐다. 피해자는 줄고 있는 추세지만, 폭력의 양상은 따돌림, 조롱, 혐오 등 사이버 가해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지진 발생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보다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학생들의 정신적 충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그 후유증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한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치권에서 교육당국과 함께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접근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치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듯 사법과 치안의 영역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교육의 영역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사회 어느 곳에나 대립과 다툼이 생겨나듯 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학생은 갈등을 조정하고 회복하는 방법이 미숙할 수밖에 없다.

체로키 인디언들에게 전승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길,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산단다. 이 두 마리의 늑대는 항상 싸운다. 한 마리는 분노와 증오의 악한 감정으로, 한 마리는 사랑과 평화의 선한 감정으로, 성격이 정반대라서 늘 싸운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어느 늑대가 이기나요?"라는 질문에 할아버지의 답변이 의미심장하다. "승자는 네가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마음속의 늑대'를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관이다. 사랑과 평화, 즉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를 기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규범을 준수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현장이다. 다양한 개성들이 소통과 공감으로 연대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인 것이다. 관용과 규범은 민주적 공동체를 지탱하는 '시민의 덕성'(Civic virtue)이기도 하다.

학교를 '민주주의의 정원'이라고 비유한다. 화사한 꽃뿐 아니라 나무와 풀과 잔디가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원을 이루는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상생하도록 가꾸는 터전이 학교다. 교육의 역할은 풍요로운 옥토를 조성하고, 깊은 애정과 기대 속에 햇빛과 물을 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성장한 정원의 존재들은 광야에 나가서도 흔들리지 않고 적응한다.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 장·전 세광고 교장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 장·전 세광고 교장

학교폭력은 일거에 해결될 일이 아니고 정원을 가꾸는 심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폭력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어디서든 존재한다. 성인들의 경우는 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지만, 성장하는 학생은 교육의 영역에서 접근해야 한다.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공동체의 규범을 함양할 때, 평화공동체로서의 학교가 희망의 꿈을 키운다. 민주주의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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