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칼럼니스트

지난 4월 23일은 1995년 유네스코 총회가 세계인의 독서 활성화를 위해 제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독서는 세계 어디를 가나 정해진 자세가 없다. 의자에 앉아 보는 자세가 일반적이다. 일부는 책을 들고 서서 혹은 천천히 걸으면서 보기도 한다. 침대나 소파 등에 누워서(엎드려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건만 '누워서 독서'를 문제 삼아 중국서 수입한 책을 탄압한 군주가 있었다. 조선 정조(1752~1800)다. 정조는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모범이며 호학(好學)의 왕이다. 다른 왕과 달리 옥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冊架圖)를 배치하고, "책을 즐겨 읽지만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책가도를 보며 마음을 푼다(1791년)."라고 했다. 책 그림만 봐도 배가 부른데 독서는 어떠했을까? 짐작이 간다.

정조는 세손 때부터 중국서 들여온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즉위 후에는 중국 서적 구입을 위해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왕의 시문. 친필, 서화, 유교(遺敎) 등을 보관하는 규장각도 부활해 문신들의 독서를 진작시켰다.

명말청초 때 경서, 역사 등 각종 서적이 밀려 들어왔다. 정조는 물론 선비들이 독서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우리 서적은 종이 품질이 질기고 글씨가 커서 읽기가 쉬웠지만, 책이 무거운 것이 흠이었다. 반면 중국 서적은 종이가 얇고 글씨가 작아 가볍고 다루기 쉬웠다.

당시 책 읽기는 방바닥 등에 책상다리로 앉아 서안(書案)에 책을 놓고 보는 자세가 일반적이었다. 다리는 물론 허리까지 아파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책은 가벼워 누워서도 볼 수 있으니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많은 선비가 누워서 책을 읽곤 했다. 당시 독서 예의범절에 비춰보면 누워서 책 읽기는 천부당만부당했다. 더욱이 사서오경 등을 누워서 읽는 것은 성인에 대한 모독이며 그 말씀에 먹칠하는 못된 행위라 정조는 여겼다.

문제는 누워서 책 읽기를 어떻게 단속하느냐였다. 중국 서적 유입을 원천 봉쇄하거나 이미 들어온 책을 폐기 처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정조는 과감히 이를 실행했다. 누워서 독서를 막는다고 중국 책을 탄압하다니! 독서광과 책 탄압은 다소 이율배반이지만 말이다.

정조의 중국 서적 탄압의 결정적 요인은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자학에 배치되는 명말청초의 사상과 문체가 급속도로 선비에게 번지자, 이를 막기 위해 일으킨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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