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승준 '행복교육괴산어울림' 전 대표

여름이 오고 있다.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뻐꾸기는 자기 손으로 둥지를 짓지 않는다. 여름 철새이니 구태여 집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내빼는 것을 알고 나니 뻐꾸기가 예쁘지 않다. 부모 뻐꾸기를 본 적이 없는 뻐꾸기는 자기를 키워줬던 새들의 둥지에 알을 낳는단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뻐꾸기처럼 행동한다면 법 이전에 도덕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아도 싸다.

정부마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겠다고 여러 정책을 펼쳤다.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학교자율화' 정책을, 박근혜 정부는 다양한 진로체험으로 학생들의 꿈을 키우자며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 또한 교육과정 다양화와 선택권 확대 라는 이유로 '고교학점제'를 공약했다. 그 효과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다양성과 선택권은 모두의 화두였다.

5년여의 노력 끝에 내년에 개교하려는 학교가 있다. 바로 단재고등학교다.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조사했다. 이미 있는 교육을 넘어서는 시도를 해보겠단다. 짬을 내서 공부하고 토론한다. 다른 나라까지 가서 살펴보고 방학 때에도 모인다. 어떤 교육이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바람직할지 고민하는 교사들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용기를 내어 학교건축도 함께했다. 학생 스스로 배움의 의지를 세우고 배움의 기쁨을 가져가는 교육과정을 짰다. 학생마다 자기 교육과정이 생긴다. 개별교육을 하겠단다.

사립이 아닌 공립에서 책임지고 대안적인 미래교육을 시도해보겠다고 교사들이 나섰다. 학생과 학부모의 호응도 확인했다. 교육청과 교육부가 여러 차례의 재검토 속에 받아들였다. 내년 3월 개교만 남았다.

갑자기 추진하던 교사들과 장학사에게 도교육청이 '동작 그만'을 외쳤다. 담당자를 바꿨다. 새로 팀을 짜겠단다. 교육과정에 보완이 필요하고, 입시에 유리하지 않은 교육과정이라며 바꾸겠단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이미 수많은 교육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았고, 나아가 '교육부 교육과정 사전 공모제' 당선으로 우수성이 검증되었다. 대학입시에서도 결코 불리하지 않음을 입시전문가로부터 확인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영·수·사·과 필수교과를 대폭 추가해 대학입시경쟁을 위한 학교로 재편성하겠단다. 단재고는 미래학교로서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에 맞춰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배우는 교육과정'으로 설계되었다고 미래교육전문가도 인정했다. 그런데 도교육청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고 재를 뿌리면서 새로 밥을 짓겠단다.'

유승준 '행복교육괴산어울림'(교육단체) 前 대표
유승준 '행복교육괴산어울림'(교육단체) 前 대표

아니다. 이건 아니다. 다 된 밥에 재뿌리지 말고 다른 곳에 솥단지를 걸고 새로 밥을 지어라. 따로 학교를 만들어 교육철학을 실현하라. 공립 대안형 단재고가 교육청의 생각과 다르다면 스스로 만들어서 실천하고 증명하라.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알을 낳으면 안된다. 그것이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면서 미래교육을 고민하는 교육청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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