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유인재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음악평론가

지난 11일, 코로나가 사실상 종식되었다. 3년 4개월 만이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코로나의 끝이 봄의 끝에서 찾아온 것이다. 자연의 봄은 끝나가지만, 마음의 봄은 다시 시작되었다. 봄은 기쁨 그 자체이다. '봄이 왔다"는 것만큼 긍정성으로 충만한 문장은 없다. 모든 가능성과 희망이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라는 것은, 봄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말한다.?"는 표현처럼 봄에는 누구나 긍정주의자가 된다. 반대로, '봄날은 간다' 만큼 부정성이 큰 문장은 없다. 슬픔의 다른 표현이다.

찬란한 봄이 주는 희망이 사라져간다는 상실감과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마음을 뒤덮기 때문이다. 수많은 혁명이 5월에 발생하는 것도 이런 감정과 무관하지 않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들은 모든 꽃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봄이 가져다주는 낙관성이 현실이라는 부정성과 최고점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낭만적인 봄의 감정은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의 감성을 자극하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봄과 관련된 표현은 무엇일까? 아마도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해서 '모든 슬픔은 사라진다"로 끝나는 가곡, <동무생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저마다의 소리로 벅찬 탄생의 기쁨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는 봄은 수많은 악기가 서로 어우러져 조화롭게 울리는 교향악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봄의 기쁨이 가장 잘 드러난 교향악은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관현악 협주곡 <사계> 중 '봄'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이다. "봄은 자연이 파티를 시작하는 언어다."라는 말처럼 순전하고 순수한 봄의 기쁨을 표현한다. 4계절이 온화하고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에 걸맞은 기쁨의 봄이다.

한편,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에 있는 중부 유럽의 봄은 '겨울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봄이 순서를 건너뛰는 법도 결코 없다.'는 말처럼 때맞춰 늘 찾아오는 신의 섭리와도 같다. 자연스럽게 희망을 품게 한다. 이런 희망의 봄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은 독일 작곡가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이다. 슈만은 "매년 겨울이 끝날 무렵, 나이 듦을 다시 느끼게 하는 봄의 예감이 찾아왔을 때 이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어떤 것을 묘사하거나 기술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곡을 잉태한 봄의 모습이 이 곡에 영향을 주었다"라고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밝다. 험난한 소송 끝에 19세기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피아니스트와 결혼 직후에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넘쳐난다. 악장마다 별명이 붙어있는데, 1악장은 '봄의 방문', 2악장은 '저녁 무렵', 3악장은 '즐거운 놀이', 4악장은 '무르익은 봄(晩春, 만춘)'이다. 마치 희망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희망으로 충만했던 슈만은 라인강에 투신한 후(1854년) 정신병원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1856년) 앤드류 솔로몬이 『한낮의 우울』에서 우울증에 빠지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은 희망"이라고 말했듯이 희망의 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겨울은 춥고, 어둡고, 길다. 그래서 매년 찾아오는 이곳의 봄은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 소설 <부활>의 도입부 표현처럼, 언제나 부활과 같은 기적이다. "몇십만의 인간이 한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 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이곳 도시에 찾아들었다." 기적과 같은 이곳의 봄은 강렬하고 장엄하며 극적이다.

반면, 희망을 품기에는 너무도 짧다. 힘들게 찾아온 봄날이 왔지만, 봄날은 너무도 빨리 가기 때문이다. 희망과 절망이,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그린란드의 자살률이 5월에 가장 높은 이유다. 이와 같은 북유럽 지방의 봄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은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Spring song>이다.
 

유인재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음악평론가
유인재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음악평론가

찰나에 불과한 듯한 봄을 영원처럼 느껴지게 한다. 경이로운 봄의 제단에 바치는 기념적인 '음악적 풍경화'와 같다. 봄날은 가고, 여름은 문턱에 와 있다. 소개한 봄의 교향악을 들으며 가슴 벅찼던 봄의 기쁨과 희망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봄은 떠나가지만, 봄의 감흥은 음악과 함께 언제나 우리 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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