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집단지성은 사전적으로 다수 개체들의 협력 또는 협업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적 능력이라 정의되며,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1910년 출간한 '개미 : 그들의 구조·발달·행동'에서 처음 제시했다.

휠러는 개체로는 미미한 개미가 공동체로서 협업하여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것을 관찰하고 나서, 개미는 개체로서는 미미하지만 군집해서는 높은 지능체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에 대해 '그것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이라고 결론진 바 있다.

오늘날 집단지성은 사회학이나 정치,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현되고 있으며, 소수의 우수한 전문가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올바른 결론에 가깝다는 주장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향성에 경종을 울리는 도서가 최근 출판됐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의 토드 로즈 교수는 집단지성이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는 부작용에 대해 인간 본능에서 원인을 찾는다. 인류는 집단에 영향받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집단의 선택이나 가치관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좋아하지 않지만 다수가 좋다고 하면 괜찮은 듯한 생각이 들거나,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를 '집단착각'(Collective Illusions)이라 명명했다.

저자는 사회적 본능이 생물학적이긴 하나 이에 대한 대응은 우리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집단착각으로 이끄는 순응의 함정에서 한 발 벗어날 수 있도록 '긍정적 일탈'을 하라고 주문한다. 무엇보다 집단적 사고에 빠지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SNS가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극한 대립의 정치, 양극화된 경제, 각자 볼 것만 보고 들을 것만 듣는 편협한 문화, 남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고립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집단지성의 함의가 새삼 부각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주목되는 사안이 기대와 우려를 낳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사업과 '글로컬대학 30' 사업이다. 교육부는 교육의 힘으로 인구절벽과 디지털 충격, 지역소멸 등 사회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는 국정과제 중 하나인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뒷받침할 '지방대 살리기' 구상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RISE 사업은 대학에 대한 행정·재정 권한을 교육부에서 지자체로 넘기는 대전환이다. 동시에 대학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조치를 동반한다.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지역대학 가운데 30개 내외의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해 대학마다 5년간 약 1천억 원을 지원한다. 자율성과 시장주의가 공존한다.

이 같은 파격적 시책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대학을 직접 지원해 본 적이 없는 지자체는 인력과 경험의 한계를, 대학은 지자체의 관리능력 부족과 지역 정치 및 산업에 예속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는 까닭이다.

대학과 지역이 위기를 극복하고 동반 성장하려면 지자체, 도의회, 대학, 산업체 등 지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집단지성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발현의 과정은 지난할 수 있다. '엘베강의 기적'과 '말뫼의 부활'은 외국의 성공사례일 뿐이다.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교육부가 RISE 사업을 앞두고 정책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2025년까지 준비할 시간이 있는 셈이다. 다양한 지역 주체들의 힘을 받아야 할 주요 사안이 집단적 사고에 매몰돼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착각에 의해 전락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판도라 상자는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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