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증평군 첫 충북도 등록문화재가 된 천주교 메리놀병원 시약소 /중부매일DB 
증평군 첫 충북도 등록문화재가 된 천주교 메리놀병원 시약소 /중부매일DB 

6.25 전쟁이후 부터 1990년까지 한강 이남 중북부지역 주민들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던 '증평 천주교 메리놀병원 시약소'가 증평군에서는 처음으로 충북도 등록문화재 3호로 지정됐다.

충북의 병원사 변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증평 천주교 메리놀병원은 1957년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로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으며, 결핵과 뱀독 치료에도 유명해 전국에서 찾는 이가 많았다. 특히 의료시설이 크게 부족했던 당시 1년에 6만명의 환자를 치료할 만큼 지역의 중심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지역 여성에 대한 직업교육과 한국간호학교 학생들의 실습을 돕는 등 여성들의 사회교육기관으로서도 크게 기여했다.

메리놀병원을 지은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는 외국에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벌이는 유럽교회에 자극을 받아 아시아 지역의 전교를 위해 창설됐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 복구와 의료사업 지원에 주력한 메리놀외방전교회는 1953년 충북지역을 위임받아 활동을 시작했고, 1955년 충북 음성에 병원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은 증평지역 인사들이 청주교구청을 방문하고 사비를 들여 증평성당에 땅을 기부해 증평성당에 수녀원을 건축하고 수녀의사 1명과 간호사 수녀 2명으로 메리놀병원을 개원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날에만 진료를 실시했으나 입소문이 나면서 새벽부터 병원 앞에서 증평지서까지 500m나 줄을 섰고, 리어커를 타고 오는 사람, 길바닥에 누운 사람, 뱀에 물려 독이 퍼진 사람,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또 증평까지 오지 못하는 먼 곳의 환자들을 위해 청주, 진천, 음성, 괴산, 주덕, 미원, 오송, 오창 등을 순회하며 진료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당시의 사회상과 의료체계를 말해준다.

메리놀병원은 1976년 증평수녀의원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산아제한으로 소아과 업무가 줄고 국민건강보험 확대, 의사·병원의 증가 등의 이유로 1987년 폐업이 결정된지 3년 후인 1990년 8월 31일 문을 닫았다. 이후 2015년 증평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철거해 병원이 있던 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부속시설인 시약소만 남게 됐다. 시약소는 환자들의 진료 대기와 예방 접종, 약 제조 등이 이뤄졌던 곳이다. 맞배지붕 단층 건물로 좌우 대칭이 형태인 이 건물은 건축사적 가치가 높고 원형이 잘 보존돼 활용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증평성당은 지난해 이 시약소 건물을 새 단장해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메리놀 병원 시약소 부활기념 미사를 갖기도 했다. 2021년에는 65년 전 간호사로 일한 91세의 요안나 수녀가 증평을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리놀 시약소의 가치를 재조명해 온 증평군은 앞으로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해 보존과 활용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며, 국가 등록문화재 승격에도 도전할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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