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독일과 프랑스가 알자스와 로렌 지역의 귀속 문제로 전쟁을 벌이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지역은 국적이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영토 분쟁이 극심한 곳이었는데, 산업혁명 이후의 로렌 지방은 석탄과 철광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철광석의 90% 이상, 인접한 독일의 루르와 자르 지역도 독일 석탄 50% 이상이 매장된 대표적 석탄 산지였기 때문에 양 지역의 철광석과 석탄 자원 확보를 위한 두 나라의 노력은 끊임없는 충돌로 이어졌다. 20세기 전반 독일 산업화에 크게 기여한 석탄 산업은 산업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광산 노동자들은 1863년 창당한 사민당의 주요 기반이었으며, 사민당의 정치자금 상당액도 루르 지역에서 나왔다. 1951년 프랑스의 제안으로 석탄과 철강의 생산·판매를 위해 창설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이후 '유럽공동체'를 거쳐 현재의 '유럽연합'으로 발전하면서 석탄 산업이 정치, 경제 공동체인 유럽통합의 역사적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산업화이후,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서독의 경제적 부흥기에 국가로부터 법적, 행정적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석탄산업은 특히 1950년대 말부터 외국산 석탄이 수입되고 대체에너지로서 석유 이용이 확산되면서 구조적 위기를 겪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석탄 산업과 그 연계산업인 화력발전, 제철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인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제기들이 환경오염, 에너지 부족 위기 문제에 대한 환경프로그램에서 기후 보호, 에너지전환, 탄소중립의 담론으로 이어지면서 석탄 산업의 구조조정과 전환이라는 정책결정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이렇듯 산업이 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다양하고, 시장성 하나만으로 존폐를 결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와 주민의 생활이 맞물려 있다. 전세계적으로 2040년 까지 발전부문 전체의 투자중 72%가 재생에너지 부문으로 전환되면서 화석연료 산업의 고용감소와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는 불가피하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수반되는 탈석탄 기조에 따라 상대적으로 경제구조가 취약한 지역의 인구와 세수 감소 등 사회경제적 타격도 매우 크다.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을 시행하여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하 법적 절차와 정책수단을 제시하고 탄소중립 이행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과 계층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계획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지역사회를 지원할 근거법이 마련되지 못해 계획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의 전력생산 구조는 현재도 화력비중이 35.6%로 가장 높다. 특히 수도권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사실상 배후생산지역으로 활용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절반이 모여있는 충남지역의 경우, 생산량 자체가 강원, 경남, 전남 지역을 모두 합한 것 보다 많다. 화력발전소에서 가까울수록 건강영향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은 그동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과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까지 감수해 왔다. 호흡기질환 사망률은 전국의 1.5배에 이르며, 폐암으로 인한 사망자나 폐렴 등 호흡기계통 질환 사망도 전국평균에 비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대안 산업이 부족한 지역의 여건과 국가차원의 전원개발 계획에 따라 일종의 생산과 이용의 불균형도 감수한 측면이 있다. 탄소중립이 전 지구적 가치가 된 지금, 충남은 노동자와 주민의 희생을 담보해야 하는 산업시설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시설을 보유한 지역이라는 오명을 안고, 신산업 구조로의 재편에 의한 실업과 지역경제 위축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주민의 선택이나 요구, 결정 그 무엇에 의함도 아니라는 면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의 정당성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고민을 남긴다.

독일 탈석탄위원회는 2018년 최종보고서에서 에너지부문에서의 조치를 통해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석탄화력발전의 중지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목표는 지역주민에게 명확한 미래 전망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 경제적 역동성, 가치 있는 일자리, 혁신적이면서 삶의 질이 높고 매력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비전있는 지역의 형성과 국가경제 전체와 삶의 질 강화 차원에서 동등한 생활환경을 조성할 것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를 위해 구조전환의 틀에서 산업과 중소기업 관련 조치, 공간개발과 인프라 구축의 촉진, 연구기관과 혁신지역, 행정기관과 공공시설의 배치, 발전소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정, 지역정착과 공동체 참여 지원프로그램, 국가적 보조 가능성 항목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 폐쇄에 따른 지역에의 영향을 평가하고 지역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면서 지역의 현황과 특성을 고려하여 기술혁신,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 해당 지역이 미래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하고, 지역마다 인구 인프라 확충을 위하여 핵심기술분야로의 전환과 새로운 연구지원시설 및 국가 기관을 배치하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완전폐지에 이르는 20년의 기간 동안 투입될 일정 규모의 재원이 지역의 구조전환 정책 조치를 지원하고 지역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 하는 내용이 담겼다. 석탄화력발전의 조기폐쇄를 논의하면서도 산업붕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 탈석탄이 가할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서 불필요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피해자간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중요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본다면 지역차원의 산업생태계 전환을 위한 지원체제의 추진 근거 즉 탄소중립기본법의 이행가능성과 한계를 뛰어넘을 특별법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산업을 보호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국토의 개발과 활용이 가치였던 시기를 지나, 환경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것이 인류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 산업을 보호하던 시기에도 보호받지 못한 지역이 환경을 보호하는 시기에 쓸모를 다해서 또다시 외면받지 않기를 바란다. 깨끗한 전원으로 전환하는데에 모두가 동의하지만 석탄화력 발전이 사라질 때 지역이 감수해야 하는 충격에는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다. 전환에너지의 의지는 전환되는 지역의 산업생태계를 바꿀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함께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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