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얼마 전에 교회 근처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 분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모인 자리에서 특별히 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무들의 성장에는 때가 있고, 그런 것처럼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할 필요가 있고, 또 때때로 잘 멈춰서 더 귀한 모습으로 자라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의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 함께 했던 교도관 한 분이 매일 만나는 교도소 내 재소자들이 그와 같은 멈춤의 시간을 잘 보내면 좋겠다는 귀한 나눔을 해준 적이 있다.

나무들의 성장에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무 의사 우종영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에 등장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보는 나무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에 특별히 성장을 멈추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나 추운 겨울이 되면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성장을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로 대부분의 나무가 성장을 멈추는 시기는 요즘과 같은 여름이라고 한다. 나무가 한창 자라기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여름에 나무들은 그만 자라기로 결심하고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햇살이 가득 내리쬐고, 또 때때로 비도 많이 내려서 여름은 참 나무들이 자라기 좋은 조건이지만 오히려 이런 여름에 나무는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을 멈춘 다음,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여름은 나무가 자라기에 너무도 좋은 조건을 잘 갖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무가 이 여름에 주어진 모든 조건들을 있는 대로 다 흡수해서 계속 쭉쭉 하늘높이 자라기만 한다면,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뿌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에너지가 나무의 가지 끝까지 닿기 어려워져서 꽃을 잘 피워 내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가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면 아름다운 꽃도 풍성한 열매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자신의 성장을 멈추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한다.

나무는 자신이 자라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잘 아는 것 같다. 지금까지 참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고, 그리고 오늘도 욕심을 내면 더 클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는 걸 알지만 여름이 되면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기 스스로 자라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꽃을 피운다. 멈춤을 통해서 더욱 중요한 생명의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다. 더 깊게 더 넓게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일들을 감당해 내는 것이다. 이처럼 나무들은 자신이 자라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잘 아는 것 같다.

비단 나무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자라야 할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물론 우리 인생이 꼭 자라고 멈추는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생에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리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지켜야 할 때가 있고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사랑해야 할 때가 있고 분노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라야 할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

오늘 나는 어떤 때를 살고 있는 걸까? 계속해서 무한정 자라야 할 때일까, 아니면 멈춰야 할 때일까, 울면서 아파해야 할 때일까, 아니면 웃으면서 잔치를 열어야 할 때일까, 나를 지켜야 할 때일까, 희생해야 할 때일까, 무엇보다 사랑을 우선해야 할 때일까, 아니면 분노해야 할 때일까, 이 여름 우리 모두가 저 나무와 같이 때를 잘 분별해서 때에 알맞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더 멀리 더 풍성하게 자라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이 여름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는 11년 만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유럽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세계 곳곳에 기록적 폭우들이 물바다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전쟁은 그칠 줄 모르고, 우리는 원전 문제로 또 반목을 이루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자라야 할 때일까, 멈춰야 할 때일까, 때를 잘 분별하는 우리 사회,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래본다. 신이 우리들에게 때의 분별력을 주셔서 때에 따라 잘 자라고 성장하며 때에 따라 소중한 생명의 열매들을 맺는 우리 사회와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이 여름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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